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데뷔한 조지아 홀(22·잉글랜드)은 170㎝의 모델 뺨치는 키에 귀티 나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 ‘가난’보다는 ‘여유’나 ‘풍족’이라는 단어가 연상되는 외모다.

하지만 홀은 ‘근성’을 아는 골퍼다. 홀은 미장기술사(건축 공사에서 벽이나 천장에 시멘트 등을 바르는 사람)인 아버지 웨인과 미용사인 어머니 샘 사이에서 태어났다. 웨인의 수입은 딸의 골프 지원은커녕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데도 벅찼다.

돈 없어 메이저대회 참가 못한 홀

대신 홀은 7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돈이 들지 않는 골프장 한쪽의 연습장에서 브리티시 여자오픈 챔피언 퍼트를 넣는 상상을 하며 놀았다. 그의 아버지 웨인은 딸의 이름을 마스터스가 열리는 미국의 주 명칭인 ‘조지아’로 지을 정도로 골프를 좋아했다. 홀의 아버지는 1996년 잉글랜드의 닉 팔도가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해 그해 태어난 딸의 이름을 조지아로 지었다. 골프의 재미를 깨달은 그는 13세가 되던 해에는 영국 여자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홀은 당시 우승으로 LPGA투어 메이저대회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 초청받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는 데 필요한 경비는 너무 비쌌다. 홀은 눈물과 함께 대회 출전을 포기했다. 그렇게 출전하지 못한 메이저대회만 3개나 됐다. 웨인은 미국 골프채널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는 데도 집 안의 물건을 팔아서 가야 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홀은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홀은 “돈이 있든 없든 내 골프 실력이 충분하다면 어디든 (어느 대회든) 참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그리고 계속 앞만 보고 달렸다”고 말했다.

브리티시 여자오픈서 감격의 첫 승

6일(한국시간) 영국 잉글랜드 랭커셔주 리덤 세인트 앤스의 로열 리덤 앤드 세인트 앤스 골프 링크스(파72·6585야드)에서 끝난 브리티시 여자오픈은 홀 부녀의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홀은 이날 5타를 줄였고 최종합계 17언더파 271타를 기록하며 2위 폰아농 펫람(태국)을 2타 차로 따돌리고 자신의 첫 우승을 메이저대회에서 차지했다. 잉글랜드 선수가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우승한 것은 2004년 카렌 스터플스 이후 14년 만이다.

홀은 “프로 전향 후 우승한 적이 없어 항상 농담으로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할 거야’라고 말해왔다”며 “그리고 진짜 그 일을 해냈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 후 홀을 번쩍 들어올린 캐디이자 아버지인 웨인은 “브리티시 여자오픈 챔피언 퍼트를 넣는 상상을 하며 딸과 연습했는데 그 상상이 현실로 이뤄졌다”고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태국골프 강세 여전

올 시즌 5승을 거두며 한국(7승)을 바짝 추격 중인 태국 군단의 기세는 이번 대회에서도 매서웠다. 국산 골프공 생산업체 볼빅의 후원을 받고 있는 펫람은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다 아쉽게 역전을 허락했으나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세계랭킹 1위 에리야 쭈타누깐도 이날 3타를 더 줄이는 집중력을 보여주며 기어코 공동 4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태국은 이 밖에도 티다파 수완나푸라(6언더파 282타)가 공동 11위, 판나랏 타나폴부냐라스(3언더파 285타)가 공동 22위에 올랐다. 한국은 유소연(28)이 13언더파 275타 단독 3위, 김세영(25)이 9언더파 279타 공동 4위로 자존심을 지켰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