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으로 출전 무산됐지만 아마추어 유망주 제자 격려차 현장 지켜
사상 최악의 자멸 덕에 우승한 로리 "난 챔피언 자격 있다"
폴 로리(스코틀랜드)는 지난 1999년 디오픈 정상에 올랐지만 정작 유명해진 건 준우승자 장 방 드 벨데(프랑스)였다.

당시 로리는 발데에 10타나 뒤진 채 최종 라운드에서 나섰다.

순위는 공동13위였다.

2라운드부터 선두에 나선 발데가 챔피언조로 티오프하기 1시간 10분 전에 그는 1번 홀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발데가 18번홀 티잉그라운드에서 올랐을 때 이미 경기를 끝낸 로리와 타수 차는 3타로 좁아졌지만, 로리의 우승을 내다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벨데가 18번홀에서 더블보기를 해도 우승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디오픈 역사상, 또는 메이저대회 사상 최악의 자멸 드라마가 펼쳐졌다.

발데는 개울, 러프를 전전하며 트리플보기를 적어냈다.

러프에서 아이언으로 그린을 곧장 노리는 무리한 공략에 이어 벌타를 받고 안전한 곳으로 쳐내야 할 네 번째 샷을 또 깊은 러프에 처박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플레이를 펼친 결과였다.

발데의 자멸 덕에 연장전에 진출한 로리는 이미 혼이 빠진 발데를 제압하고 생애 첫 메이저 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다.

디오픈을 제패하기 전에 이미 유럽프로골프투어에서 2승을 거뒀던 로리는 이후 5승을 보탰고 라이더컵에 2차례 출전했으며 대영제국 훈장까지 받는 등 성공적인 골프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로리는 디오픈에서는 '잊힌 챔피언'으로 살아왔다.

발데의 자멸 드라마가 워낙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스포츠 격언은 적어도 1999년 디오픈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1999년 디오픈에서는 차라리 "아무도 챔피언을 기억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어울릴 판이다.

오는 19일 개막하는 147회 디오픈 개최지가 바로 19년 전 로리가 발데의 자멸 덕에 우승했던 커누스티 골프 링크스다.

디오픈은 만60세가 안 된 역대 챔피언에게는 자동 출전권을 준다.

이제 49세인 로리는 이 대회 출전권이 있지만, 올해는 발과 허리에 부상이 도져 출전을 포기했다.

그는 "휴식과 추가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면서 "올해는 아예 시즌을 접었고 내년부터 시작하는 시니어 투어에 더 건강한 몸으로 참여하고 싶다"고 폴 로리 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선수로 출전은 무산됐지만, 그는 연습 라운드 때부터 커누스티 골프 링크스에 모습을 드러냈다.

폴 로리 재단을 통해 키우고 있는 제자 샘 로크(스코틀랜드)가 디오픈에 출전하기 때문이다
19살 난 로크는 스코틀랜드 아마추어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고 예선을 거쳐 디오픈에 도전한다.

로리가 운영하는 골프 아카데미에 딸린 커피숍에서 일하며 로리에게 골프를 배우는 로크는 "로리가 커누스티 골프 링크스의 공략법을 상세하게 알려줬다"면서 "그의 경험이 내 것이 됐다"고 말했다.

로크의 연습 라운드를 내내 따라다닌 로리는 "로크는 난생처음 디오픈에 출전한다"면서 "로크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알려줬다"고 밝혔다.

로리는 커누스티 골프 링크스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인 애버딘에서 태어나 자랐고 지금도 살고 있다.

19년 전 커누스티에서 거둔 우승에 대해 로리는 "한동안 내가 디오픈 우승을 주웠다는 뒷말에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발드가 우승 기회를 걷어찬 것도 맞고 내가 운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라면서 "다만 메이저대회 우승 기회가 왔을 때 나는 적절한 샷을 날렸다는 게 중요하다"고 당시 우승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로리는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든 클라레 저그에는 내 이름이 새겨져 있다.

내 이름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