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 코치 박진영 씨(35)와 이승용 씨(35)는 최근 지나가는 말로 제자 중 가장 우승에 근접한 선수를 묻자 박채윤(24·호반건설·사진)을 꼽았다. 두 코치에 따르면 박채윤은 공격 성향이 너무 강했는데 이를 잡아주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는 실력에 비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였다. 우승 경쟁에 뛰어드는 듯하다가도 스스로 자멸하기 일쑤였다.

'심리치료'로 첫 우승 낚은 박채윤
박채윤은 올 시즌을 앞두고 심리 치료를 병행하며 이를 극복했다. 1일 강원 평창 버치힐 골프클럽(파72·6364야드)에서 끝난 KLPGA투어 맥콜·용평리조트오픈은 180도 달라진 박채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박채윤은 사흘간 13언더파 203타를 적어내 동타를 기록한 조정민(24·문영), 김혜진(22), 한진선(21)과 연장전에 들어갔고 연장 첫 홀에서 홀로 버디를 낚아채며 우승을 차지했다.

개인 첫 1부 투어 우승으로 박채윤은 지난 14개 대회에서 모은 상금(약 8975만원)을 훨씬 뛰어넘는 1억2000만원을 손에 넣었다. 시즌 상금도 2억원을 넘겨 단숨에 상위권으로 도약했다. 2년 시드를 받게 돼 시드 유지 걱정도 해결했다. 박채윤은 “지난 성적이 좋지 않아서 올 시즌 목표를 시드 유지로 잡았다”며 “우승을 차지했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박채윤은 이날 1타 차 공동 2위로 경기를 시작했다가 3번홀에서 더블 보기를 범해 우승권에서 이탈하는 듯했다. 그러나 6번홀(파3)과 7번홀(파4) 연속 버디로 실수를 만회하더니 14번홀(파4) 버디로 다시 우승 경쟁에 뛰어들었다. 승부처는 마지막 두 개 홀이었다. 박채윤은 17번홀(파3)과 18번홀(파5)에서 연속 버디를 기록했고, 그때까지 선두를 달리던 한진선이 18번홀에서 보기로 미끄러지며 극적으로 연장전에 진출했다.

박채윤이 사흘 내내 버디를 잡은 18번홀에서 열린 연장전. 어찌 보면 박채윤의 우승이 예약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박채윤은 앞서 세컨드 샷을 떨어뜨린 곳과 비슷한 곳에 공을 보냈다. 오르막과 내리막, 옆 경사로 이어지는 약 4m 거리의 까다로운 버디 퍼트였으나 박채윤은 망설이지 않고 홀 안으로 공을 보냈다. 경쟁자들의 퍼트는 모두 홀을 외면했고 박채윤의 우승이 확정됐다.

비록 우승은 아니었지만 신인 김혜진과 한진선도 공동 준우승을 차지하며 ‘슈퍼루키’ 최혜진(19·롯데)으로 굳어지던 신인왕 판도에 변화를 예고했다. 특히 김혜진은 그동안 11개 대회에 나서 커트 통과를 네 번만 하고 상금은 약 1500만원(94위)이 전부일 만큼 1부 투어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2라운드까지 공동 2위 그룹에 1타 앞선 단독 선두에 나서는 등 이번 대회에서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신인왕 부문 2위에 올라 있는 한진선도 이번 준우승으로 1위 최혜진과의 격차를 조금이나마 좁혔다.

김혜진은 “드림 투어보다 코스 그린이 단단하고 빠른데 조금씩 적응하고 있다”며 “이번 대회를 잘 마무리해 최혜진뿐 아니라 김혜진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지난해 이 대회 우승자이기도 한 최혜진은 이날 1타를 잃어 5언더파 211타 공동 30위에 그쳤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