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골프여제’ 박인비(30)의 흐름이 좋다. 올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첫 출전 대회인 HSBC월드챔피언십에서 공동 31위로 샷감을 조율한 이후 세 개 대회에서 우승(뱅크오프호프파운더스컵)과 준우승(ANA인스퍼레이션)을 거둬들였다. ‘내비게이션 퍼팅’이 대부분 복원됐고, 무뎠던 아이언샷도 날카롭게 날이 섰다. 20위권(72.97%)이었던 그린 적중률이 올 들어 3위(78.47%)로 껑충 뛰었다. 우승에 필요한 기술적 필요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바람 잡은 ‘퀸 비’

女帝 탈환나선 박인비… "린드베리 또 너냐"
시즌 다섯 번째 출전인 LPGA 투어 롯데챔피언십(총상금 200만달러)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박인비는 12일(한국시간)과 13일 미국 하와이 코올리나GC에서 열린 이틀간의 라운드에서 버디 7개를 잡아내는 동안 보기는 단 한 개만 내주며 중간합계 6언더파를 적어냈다. 13일 2라운드에선 버디만 3개를 쓸어담아 한층 안정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방향을 수시로 바꾸는 해양성 바람으로 오버파가 속출한 악조건 속에서 받아든 성적표다. 10언더파 단독 선두를 달린 브룩 헨더슨(캐나다)과는 4타 차 공동 4위. 남은 3, 4라운드에서 얼마든지 뒤집기가 가능한 성적이다.

박인비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이 대회에 출전했다. 하지만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하와이 징크스’라는 말이 여전히 그의 뒤를 따라다니는 이유다. 2015년 우승 문턱까지 갔다가 ‘빨간 바지’ 김세영(25)과의 연장전에서 이글 한 방으로 패한 게 아쉬움이자, 지금까지 가장 좋았던 성적이다.

그럼에도 그는 하와이를 좋아한다. ‘제2의 고향’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할 정도로 쌓인 인연 때문이다. 그는 2라운드가 끝난 뒤 “하와이는 네 살 때부터 가족과 매년 휴가를 같이 왔던 곳으로 행복한 기억이 많다. 강한 바람도 익숙하다”고 말했다.

남은 건 우승이다. 롯데챔피언십을 제패할 경우 LPGA 통산 20승이자, 올 시즌 1승씩을 올린 7명의 챔피언 가운데 가장 먼저 2승을 쌓는다.
女帝 탈환나선 박인비… "린드베리 또 너냐"
다시 만난 린드베리

박인비는 2013년 4월부터 2015년 10월까지 92주간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를 지켰다. 이후 손가락과 허리 부상 등으로 리디아 고(뉴질랜드), 에리야 쭈타누깐(태국), 유소연(27), 박성현(25), 펑산산(중국) 등 후배들에게 그린여왕 자리를 내줬다. 이후 2년6개월간 10위권 언저리를 맴돌았다. 지금은 다르다. 19위(2018년 3월12일 기준)까지 떨어졌던 랭킹이 현재 3위(4월9일 기준)까지 수직 상승했다. 22주째 1위를 고수하고 있는 펑산산과는 0.56점 차에 불과하다. 우승할 경우 1.3점(일반대회 기준) 안팎의 세계랭킹 포인트를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대회가 ‘여제의 귀환’을 완성할 적기다.

좁은 길목에서 하필 퍼닐라 린드베리(스웨덴)를 다시 만났다는 게 껄끄럽다. 린드베리는 2주 전 메이저 대회 ANA인스퍼레이션에서 1박2일 연장 승부 끝에 박인비를 꺾은 뒤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골든 슬래머’를 제압한 자신감이 샷과 퍼팅 등을 다른 차원으로 올려놨다는 분석이다. 그는 롯데챔피언십에서도 이틀 동안 6타를 덜어내 박인비를 다시 따라붙었다. 익숙한 상대인 2라운드 중간 선두 브룩 헨더슨이나 공동 2위 모 마틴(미국), 펑산산보다도 경계심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커트 탈락 직전까지 몰렸던 이정은6(22)가 2타를 줄여 ‘동명이인 골퍼’ 이정은(30)과 나란히 공동 47위로 본선에 합류했다. 첫날 5오버파를 쳐 벼랑 끝에 섰던 박성현도 2타를 덜어내 턱걸이로 본선행 막차를 탔다. 첫날부터 고열에 시달렸던 전인지(24)는 상태가 악화돼 2라운드를 기권해 아쉬움을 남겼다. 전인지는 이 대회에서 준우승만 두 번 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