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N 샘 보든 기자 "한국인 5분의 1이 김씨…명망 있는 성"
여자컬링 보고 놀란 ESPN, 김씨가 많은 이유를 찾다
주장(스킵)은 김은정. 리드 김영미, 세컨드 김선영, 서드 김경애, 후보 김초희. 감독은 김민정.
한국 여자컬링 대표팀 명단을 본 외국인들은 대부분 깜짝 놀란다.

"이들 모두 자매들인가?"라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김영미와 김경애만 자매일 뿐 다른 혈연관계는 없다는 사실을 알면 더욱 놀란다.

미국 스포츠매체 ESPN의 샘 보든 선임기자도 마찬가지였다.

보든 기자는 김민정 감독을 만나 팀원들을 어떻게 부르는지 물었다.

김 감독은 "이니셜을 부른다.

김은정은 E 킴(KIM), 김선영은 S 킴…. 이런 식으로 부른다"고 설명했다.

여자컬링 선수들 유니폼 등에 쓰여 있는 대로 부르는 것이다.

김 감독은 "한국에서 김 씨는 아주 흔하다.

우리는 헷갈리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여자컬링팀을 보고 생겨난 보든 기자의 호기심은 "한국에는 왜 이렇게 김씨가 많을까?"라는 더욱 근원적인 질문으로 이어졌다.
여자컬링 보고 놀란 ESPN, 김씨가 많은 이유를 찾다
보든 기자는 그 이유를 성실히 조사해 17일 기사로 정리했다.

그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의 성을 살펴봤다.

121명 중 34명이 김(KIM) 씨였다.

성을 'GIM'으로 표기한 알파인의 김소희를 합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그다음으로 이(Lee) 씨가 13명, 박(Park) 씨는 9명이다.

선수단의 절반이 3개 성씨로 이뤄졌다.

보든 기자는 이 현상이 여자컬링이나 이번 평창올림픽 출전 선수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2015년 인구센서스를 보면, 한국에서 김 씨는 전체 인구의 약 5분의 1을 차지한다.

김·이·박 등 상위 10개 성이 전체 인구의 64%를 이룬다.

보든 기자는 고려대 국제대학원 김은기 교수의 연구에서 해답을 찾았다.

김 교수는 "과거 한국에서 성은 귀족만 가질 수 있는 특권이었다.

17세기 정도까지만 해도 인구의 절반가량이 성을 가질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성이 없던 사람들이 성을 갖게 됐을 때, 많은 이들은 김·이·박을 선택했다.

이 성이 역사적으로 많은 왕과 왕족, 중요한 인물을 많이 배출한 명망 있는 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보든 기자는 "이 성을 가진 한국인들이 실제로 귀족 혈통인지, 아니면 그냥 조상이 선택한 성인지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적기도 했다.

보든 기자는 한국인이 성을 중요시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스탠퍼드대에서 동아시아 역사를 연구하는 문유미 교수는 "한국 여성은 결혼해도 성을 바꾸지 않는다.

더 좋은 운명을 만들기 위해 이름을 바꾸는 경우는 있어도 조상이 물려준 성을 바꾸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이름 앞에 성이 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보든 기자는 소개했다.

보든 기자는 일반 한국인들이 똑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구분하는지도 알아냈다.

김 교수는 보든 기자에게 "혼동을 방지하기 위해 성 뒤에 직업과 '님'을 붙인다.

예를 들어 김 씨인 기자는 '김 기자님'이라고 불린다.

김 교수님, 김 검사님, 김 사장님…. 이런 식으로 부른다"고 설명해줬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