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미국프로골프(PGA)투어 CJ컵나인브릿지 2라운드가 열린 20일 제주 서귀포시 클럽나인브릿지(파72·7196야드)에서는 감춰진 제주의 발톱이 조금씩 드러났다. 강해진 바람과 그린 구석으로 자리를 옮긴 얄궂은 핀이 선수들을 괴롭혔다. 78명의 출전 선수 중 21명만이 언더파를 쳤다. 난제(難題)를 손쉽게 풀어낸 주인공은 다음달 군에 입대하는 노승열(26·사진)이었다.

◆첫날 7오버, 둘째 날 7언더 ‘극과 극’ 반전

어제는 7오버, 오늘은 7언더…노승열 '바람 불어 좋은 날'
노승열은 이날 7언더파 65타를 쳤다. 2라운드 최저타(데일리 베스트)다. 보기 없이 버디 5개에 마지막 홀인 18번 홀(파5)을 이글로 장식하며 2라운드를 그의 날로 만들었다. 그는 전날 트리플 보기, 더블 보기 등을 쏟아내며 7오버파를 적어냈다. 하루 새 14타 차를 넘나드는 반전 샷을 연출한 것이다.

그는 “한 번도 이런 성적을 적어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날 꼴찌에서 두 번째였던 순위도 41계단이나 껑충 뛰었다. 이틀 합계 이븐파 공동 36위다. 이날 새로 선두에 오른 루크 리스트(미국)와는 9타 차다. 전날 4언더파를 친 리스트는 이날만 5타를 추가로 덜어냈다.

다음달 입대하는 노승렬은 이번 대회에 출전할 예정이 아니었다. 어니 엘스(남아프리카공화국)가 출전을 포기하면서 막차를 탔다. 입대 준비를 하느라 지난달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제네시스 챔피언십 이후 3주간 거의 골프채를 잡지 않았다. 노승열은 “일요일에 갑작스럽게 대체 출전 통보를 받고 월요일부터 이틀간 해뜨고 해질 때까지 연습했지만 첫 라운드에선 어떻게 스윙해야 할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1라운드가 끝난 뒤 1시간 정도 연습하고 나니 스윙 느낌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퍼트감도 괜찮다. 이날 18번홀에서 12m짜리 긴 퍼트를 홀에 꽂아 넣어 이글을 잡았다. 버디와 파를 잡을 때 그는 거의 1퍼트로 마무리했다.

선두와는 9타 차가 난다. 하지만 3, 4라운드가 남아 있어 우승경쟁에 가세할 가능성도 있다. 더욱이 노승렬은 바람을 좋아한다. 그는 “골프를 시작한 고향 속초도 바람이 많은 곳”이라며 “개인적으로 바람 부는 날 라운드를 즐기곤 했다”고 말했다. 남은 라운드의 기상 조건이 나빠진다면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다. 그는 “우승하더라도 입대는 변함이 없다”며 “입대 전 우승컵을 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2012년 PGA투어에 데뷔한 그는 2014년 4월 취리히 클래식을 제패한 이후 우승이 없다.
< 제이슨 데이 “제주 바람 무섭네” > 한국 첫 PGA투어에 출전한 선수들이 20일 제주 바람에 고전했다. 전날 2언더파 공동 12위에 오르며 우승경쟁에 시동을 건 제이슨 데이(호주)도 이날 2타를 잃고 중위권으로 미끄럼을 탔다. 데이가 바람에 맞선 채 힘겹게 샷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제이슨 데이 “제주 바람 무섭네” > 한국 첫 PGA투어에 출전한 선수들이 20일 제주 바람에 고전했다. 전날 2언더파 공동 12위에 오르며 우승경쟁에 시동을 건 제이슨 데이(호주)도 이날 2타를 잃고 중위권으로 미끄럼을 탔다. 데이가 바람에 맞선 채 힘겹게 샷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선수 “바람 불어 좋은 날”

전날 9언더파 단독 선두로 경기를 지배한 저스틴 토머스(미국)는 2타를 잃고 주춤했다. 350야드 장타를 휘두르며 코스를 마음껏 주무르던 전날과 달리 샷이 좌우로 휘는 등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졌다. 전반에만 보기 3개를 내며 공동 선두를 허용한 그는 후반 15번 홀(파4)까지 버디 3개 보기 1개로 2타를 회복하며 단독 선두를 되찾아 분위기를 바꾸는 듯했다. 하지만 마지막 18번홀에서 벙커를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다시 뒷걸음질쳤다. 호주의 캐머런 스미스와 같은 7언더파 공동 4위다. 첫날 ‘퍼펙트 라운드’를 마친 뒤에도 “더 타수를 줄이지 못해 아쉽다”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친 그였다.

K골퍼들은 제주 바람을 반겼다. 17명 중 11명이 2라운드에서 순위를 끌어올렸다.

전날 4언더파로 안정된 경기력을 선보인 김민휘(26)가 버디 3개, 보기 1개를 묶어 2타를 덜어내 중간합계 6언더파 공동 6위로 우승경쟁에 가세했다. 이틀 합계 2언더파를 적어낸 김경태(31·신한금융그룹)와 1타를 덜어낸 최진호(33·현대제철)가 공동 24위. 황중곤(25)도 3타를 추가로 줄여 중위권인 44위로 올라섰다. 반면 배상문(31)과 김시우(22·CJ대한통운)는 각각 4타, 3타를 잃고 중하위권으로 밀렸다.

서귀포=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