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cing Tech – [3]

‘전 일본 프로 드리프트 선수권’은 2001년 처음 개최됐다. 드리프트 주행을 목적으로 한 모터 스포츠 대회다. 일반적으로 ‘D1그랑프리’(D1 GRAND PRIX), ‘D1GP’라고 부른다. 주최는 주식 회사 D1코퍼레이션이다.

2009년부터 ‘그란투리스모’가 메인 스폰서로 참여했다. 이에 시리즈 명칭이 ‘그란투리스모 D1GP시리즈’로 바뀌었다. 든든한 스폰서를 대회는 규모를 키웠고 그만큼 명칭도 길어졌다. 2010년부터 ‘D1GP 국제 드리프트 챔피언십 그란투리스모 D1GP시리즈'로 변경되었다.
D1GP의 창립자 츠치야 케이치(왼쪽)와 이나다 다이지로. 사진=위키피디아
D1GP의 창립자 츠치야 케이치(왼쪽)와 이나다 다이지로. 사진=위키피디아
D1의 시작
D1을 제안한 사람은 전 레이서인 츠치야 케이이치와 잡지 ‘옵션(OPTION)’ 의 창시자 이나다 다이지로다. 자동차 비디오 매거진 ‘비디오 옵션(VIDEO OPTION)’의 기획 ‘이카수 팀 하쉬리야 텐코쿠(ikasu team hashiriya tennkoku)’에서 파생됐다. hashiriya는 ‘走り屋’, 거리 경주라는 뜻이다. 하나의 매거진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공터에서 드리프트 실력을 겨뤘던 게 계기가 됐다.

이후 드리프트의 ‘D’,와 도리킹(드리프트 킹)의 ‘D’, 다이지로의 ‘D’. 이들 세 개의 ‘D’가 정점을 지향한다는 뜻에서 ‘D1’이라 불렀다. D1GP는 “드리프트를 아무리 잘해봤자 미래가 없다”는 현실에서 탈피, “드리프트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프로화, 스포츠화를 하겠다는 의도로 개최됐다.

D1GP는 단순히 속도를 겨루는 일반적인 모터스포츠와 달리 드리프트 주행의 박력과 예술성을 점수화해 경쟁한다. 시리즈전(연간 6~8전)으로 치러지며 2003년부터는 해외에서도 열리고 있다.

출전자들은 각 지역를 대표하는 드리프터(드리프트 애호자)들을 중심으로 승부를 겨룬다. 즉, 일본에서 활동하는 수만 명의 드리프터들 중 최고를 가리는 대회인 것이다. 최근에는 일본 최대 모터스포츠대회인 ‘슈퍼 GT(SUPER GT)'등에서 활약하는 프로 레이서도 참전하고 있다.
드리프트의 무대, 오다이바
드리프트의 무대, 오다이바
D1GP는 매년 1월 평가전을 오다이바에서 열었다. 오다이바는 도쿄 도심과 가깝다. 이는 원래 드리프트가 스트리트에서 시작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외에 D1GP의 일반 인지도를 높이려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다. 오다이바의 대표 건물 중 하나인 후지TV 본사 인근 주차장에 설치한 특설 코스에서 경기가 열린다.

첫 프로 드리프트 행사는 2000년 열렸다. 우승자에게 50만엔의 상금을 줬다. 이전에도 전국의 강호 드라이버들이 우승을 겨루는 단발성 행사는 있었지만, 상금을 놓고 열린 것은 이 대회가 처음이었다.

D1GP 명칭으로는 이듬해인 2001년부터 열렸다. 각 라운드의 승자에게는 20만엔, 시리즈 챔피언에는 100만엔의 상금을 줬다. 제 1~3전까지는 관객을 초대하지 않고 ‘비디오 옵션’의 수록용으로 진행됐다. 이후 제4전 에비스에서 관객을 동원해 개최했다. 또 D1의 역사에서 유일하게 S타이어 사용이 허용된 것도 이 시즌이다. 참가 선수도 전국에서 이름을 날리던 드리프터로 구성됐다.

2002년부터 튜너 워크스팀의 참가가 시작됐다. 블리츠는 노무라 겐, HKS는 타니 구치 노부테루, 아펙스는 이마무라 요오이치, 트러스트는 히라오카 히데오를 드라이버로 기용했다. 츠쿠바 서킷에서 개최도 이 시즌이 처음이다.

이렇게 대회 초창기 참가자는 유명한 부품 메이커나 개인 위주였다. 점차 인기가 상승하자 2004년 개막전에서는 시리즈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완성차 메이커의 워크스팀(GM폰티악 GTO)이 출전했다.

자동차 마니아부터 튜너, 완성차 메이커까지 D1GP에 뛰어들면서 대회의 규모는 계속 커졌다. 이에 도쿄 도심을 넘어 서킷과 해외 무대까지 진출하는 등 팽창기를 맞게 된다.

고두일 객원 칼럼리스트(엔지코퍼레이션 대표, 모터랩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