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유의 무표정한 경기…마지막 퍼트 넣고서야 엷은 미소

'침묵의 암살자'가 드디어 두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골프 여제' 박인비(28·KB금융그룹)는 21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골프코스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골프 여자부 최종라운드 경기 마지막 파 퍼트를 넣은 뒤 승리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박인비는 경기 도중 좀처럼 표정 변화가 없는 선수로 유명하다.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조용히 경기를 치르면서 상대 선수들의 추격을 따돌린다는 의미로 '침묵의 암살자'라는 무시무시한 별명도 붙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돌부처'라며 그의 한결같은 표정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이날 경기에서도 박인비의 '포커페이스'는 명성 그대로였다.

리우올림픽 여자골프는 190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대회 이후 116년 만에 열리는 의미 있는 경기였다.

역사적인 금메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숨 막히는 승부의 무대가 펼쳐진 이 날 최종라운드.
박인비는 2위 리디아 고(뉴질랜드)에게 불과 2타 앞선 상황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리디아 고는 세계랭킹 1위의 강자로 2타 차는 불과 한 홀에서도 뒤집힐 수 있는 격차였다.

그러나 리디아 고가 2번 홀에서 두 번째 샷을 실수하며 1타를 잃었고 박인비는 3번 홀부터 3개 홀 연속 버디를 낚아 순식간에 6타 차까지 훌쩍 달아나는 싱거운 승부로 돌변했다.

하지만 이때도 박인비의 얼굴은 전혀 변화가 없었다.

가끔 버디를 잡은 뒤 터져 나오는 갤러리들의 박수에 답하기 위해 한 손을 가볍게 들어 보일 뿐이었다.

이미 6타 차 리드를 안고 시작한 마지막 18번 홀(파5). 박인비는 벙커를 오가며 고전했지만, 승부는 예전에 갈린 상황이었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경기하던 박인비는 마지막 파 퍼트를 넣은 후에야 엷은 미소를 띠며 두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손가락 부상으로 힘든 한 해를 보내던 박인비가 2016년을 단숨에 '자신의 해'로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

박인비는 2016시즌 성적은 부진했지만, 골프 명예의 전당 가입과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굵직한 업적을 2개나 달성했다.

부상과 부진이 겹치는 마음고생 끝에 어렵게 출전한 올림픽 금메달에 눈물을 흘릴 법도 했으나 박인비는 시상대에 올라서도 특유의 잔잔한 미소로 팬들의 환호에 답했을 뿐 기어이 울지는 않았다.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email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