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 알리, 손 떨며 감동적인 점화…서울올림픽 '비둘기 수난'

근대 올림픽에서 성화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이다.

그로부터 8년이 흐른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는 그리스에서 채화된 성화가 3천187㎞를 이동해 독일 베를린까지 3천331명의 성화 주자에 의해 옮겨져 성화대에 점화됐다.

성화 봉송의 등장은 나치 정권을 이끌던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민족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홍보정책의 산물이었다.

비록 성화 봉송이 좋은 의미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80년이 흐른 지금은 인류의 화합과 평화를 기원하는 '의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성화 봉송 방식뿐만 아니라 성화대에 불을 붙이는 점화 방식도 다양하게 변했다.

1936년 베를린 대회부터 이어진 고전적인 점화 방식은 최종 성화 주자가 성화대로 달려가 성화봉을 번쩍 치켜세운 뒤 직접 불을 붙이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에 처음으로 변화를 준 것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다.

당시 최종 성화 주자는 성화대 밑에 설치된 오륜기 마크 밑에 불을 붙였고, 불은 오륜기 마크를 따라 경기장 상단의 성화대로 옮겨붙었다.

최종 성화 주자가 직접 성화대에 불을 붙이는 방식에서 처음으로 벗어난 이벤트였다.

성화대 점화 방식에 획기적인 변화를 준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이다.

서울 올림픽에서는 3명의 성화 점화자가 성화대 하단에 마련된 엘리베이터 방식의 점화대를 타고 성화대까지 이동해 직접 불을 붙였다.

그동안 최종 성화 주자들이 계단을 통해 성화대 인근으로 이동하던 방식에서 처음으로 벗어나는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성화대 주변에 앉아 있던 비둘기들이 갑자기 타오른 성화를 피하지 못해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는 뒷얘기도 흘러나왔다.

화려한 기계 장치를 통한 성화 점화 방식을 벗어나 '감동'을 연출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성화 점화는 역대 최고라는 찬사를 받을 만하다.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투병하던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는 최종 성화 점화자로 나서 큰 화제가 됐다.

알리는 병 때문에 떨리는 손으로 점화장치에 불을 붙였고, 불꽃은 성화대까지 연결된 줄을 따라 이동해 점화됐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성화 점화도 눈길을 끌었다.

성화 최종 주자에게 불꽃을 이어받은 궁사는 멀리 성화대를 향해 불이 붙은 화살을 날렸고,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화살이 성화대에 불을 댕겼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은 역대 가장 아름다운 점호 방식으로 기억된다.

성화 점화자가 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연못 한가운데서 바닥에 불을 붙였고, 곧바로 그를 둘러싼 원형 성화대가 불꽃을 내뿜으며 엘리베이터 장치를 통해 경기장 꼭대기로 이동하는 장면은 'SF 영화'를 연상케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몸에 와이어를 장착한 최종 점화자가 경기장 상단 벽면을 내달려 성화에 불을 붙이는 액션 연기로 눈길을 끌었다.

성화 릴레이 도입 80주년을 맞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성화는 소박하지만, 시각적으로는 어느 때보다 화려했다.

마라토너 출신 반데를레이 지 리마가 작은 단지 모양의 성화대에 불을 붙였고, 와이어에 연결된 성화대는 공중으로 떠올랐다.

성화대가 멈춰선 곳에는 타오르는 불꽃을 상징하는 꽃잎 모양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기계 장치가 설치됐다.

철제 장식으로 만들어진 꽃잎은 성화의 불꽃을 반사하며 '살아 움직이는 성화'를 표현했다.

한편, 성화 점화가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성화대는 4개의 기둥이 교차하는 구조였지만 성화 점화 순간 1개의 기둥이 작동되지 않고 3개만 바닥에서 올라와 관계자들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horn9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