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세계적인 모델 아드리아나 리마(오른쪽)가 4일(현지시간) 리우데자네이루의 마우아 광장에서 안토니우 페드루 리우데자네이루시 관광국장에게 올림픽 성화를 전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브라질의 세계적인 모델 아드리아나 리마(오른쪽)가 4일(현지시간) 리우데자네이루의 마우아 광장에서 안토니우 페드루 리우데자네이루시 관광국장에게 올림픽 성화를 전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올라(ola)! 웰컴 투 브라질!” 아랍에미리트(UAE)의 토후국 아부다비를 거쳐 리우데자네이루로 가는 길은 멀었다. 2만㎞가 넘는 여정, 31시간이 걸린 고단한 비행 때문일까. 낯선 자원봉사자의 환대가 더없이 살갑게 느껴졌다. 4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 갈레앙 공항에서 만난 여대생 나탈리아(20)는 ‘무엇이든 다 도와주겠다’는 투로 싱글거렸다. 그의 순한 눈빛과 기관총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 두리번거리는 무장 군인 세 명의 날선 눈매가 묘하게 겹쳐졌다. 출국 전 만난 한 브라질 여행작가가 ‘두 얼굴의 리우’를 기대하라더니, 이를 두고 한 말인 듯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맞는 게 없는데 어떡하죠?” 공항 전기콘센트 구멍이 너무 작아 스마트폰 충전기 플러그가 안 들어간다고 하자 그가 30분가량을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그러고도 어댑터를 구하지 못하자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그래도 정색하고 물어봤다. “모기는 좀 줄어들었나요? 치안도 안 좋다고 하던데, 올해만 수천명이 죽었다고….”

[이관우 기자의 여기는 리우!] "헤이~ 한국청년, 88올림픽 때가 좋았어…리우는 폐막할 때까지 공사 중일 거야"
기분이 상할 법한 질문이었지만 그는 또 웃었다. 대신 ‘모기와의 전쟁’을 말하려는 듯 권투 동작을 하더니 “방역을 열심히 해서 모기는 잠잠해졌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생애 첫 리우’는 지카 바이러스 공포를 잠시 잊게 할 만큼 친절했다.

리우의 민낯은 버스로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숙소에 가자마자 드러났다. 1년 전에 이미 돈까지 치른 방에 처음 보는 중국인 기자가 반나체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숙소 담당 직원 말이 더 가관이었다.

“원래 같이 쓰기로 예약한 거 아니었어요?” 하루 30만원 하는 방값을 낸 건 나라며 입금증(인보이스)까지 꺼내 흔들자 프런트 직원이 한술 더 떴다. 방은 알아보겠지만 브라질올림픽위원회가 미디어빌리지를 소유하고 있지 않아 뭔 일이 벌어져도 어쩔 수 없다는 얘기였다. 대만 애플데일리 기자 첸 요호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 정도면 약과예요. 우린 5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방을 예약한 기록 자체가 없다고 해서 시내 호텔로 쫓겨날 판이에요.”

남은 표를 구하려는 리우 시민과 관광객들이 마라카낭 경기장 매표소 주변에 몰려 있다. 이관우 기자
남은 표를 구하려는 리우 시민과 관광객들이 마라카낭 경기장 매표소 주변에 몰려 있다. 이관우 기자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렸는지 60대로 보이는 한 캐나다 사진기자가 다가왔다. 뜬금없이 “한국 기자 양반! 몇 년도에 태어나셨나?”라고 물었다. ‘나이 먹을 만큼 먹었다’고 답하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1988년도 이전에 태어났으면 알겠네. 서울올림픽 때가 정말 좋았다고. 여긴 아마 폐막식 때까지 공사 중일 거야.”

먼 이국 땅에서 들은 서울올림픽 칭찬은 분명 위로가 됐다. 하지만 문제는 끝도 없이 터져나왔다. 최첨단 지문인식 장치가 달려 안전한 방이라며 자랑스럽게 기자를 데리고 간 방은 한눈에 봐도 급조한 티가 역력했다. 세면대 물은 콸콸 나오는 듯하더니 금세 물줄기가 가늘어졌다. 침실 조명 3개에는 하나같이 전구가 없었다. 공사를 하다 말았는지 샤워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선반 뭉치를 직접 조립해 벽에 달고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새벽에 ‘쿵’ 소리가 들려 깨어나 보니 벽에 걸려 있던 그림 액자가 떨어져 있었다. 양면 접착테이프로 대충 벽에 붙여놓았던 게 떨어진 것이다. 자물쇠가 달린 서랍장에 현금과 여권을 넣었다가 혹시나 해서 잡아당겨 봤다가 피식 웃음이 터져나왔다. 힘없이 열렸기 때문이다.

경기장이 몰려 있는 바하는 개막식을 하루 앞둔 4일(현지시간)에도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이관우 기자
경기장이 몰려 있는 바하는 개막식을 하루 앞둔 4일(현지시간)에도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이관우 기자
올림픽 개막 열기는 찾기 어려웠다. 수영과 체조 등 9개 종목 경기장이 몰려 있는 곳인 바하(Barra)의 올림픽 파크. 개막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도 중장비 소리가 요란했다. 선수촌과 경기장을 연결하는 육교는 공정률이 50%도 채 되지 않아 철골만 세워져 있을 정도. 개막식에 앞서 시작된 축구 예선전도 관중석 곳곳이 텅 빈 채로 열렸다. 바하에서 주택 경비원으로 일한다는 알폰소 니나가 말했다.

“정부가 무능하니까, 국민들이 몸으로 때우는 게 리우올림픽이에요. 그래도 잘 치러낼 테니까 즐기다 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날 오후 늦게 현지 취재기자 사이에서 5일(현지시간) 열리는 개막식에 맞춰 테러가 있을 거란 소문이 한 바퀴 돌았다. 한 기자가 말했다. “개막식 입장권 추첨에서 차라리 떨어졌으면 좋겠다.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니까.”

리우올림픽은 과연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