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 승부조작 확산·노골화

복싱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승부 조작이 일어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주장이 제기됐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은 1일(현지시간) 아마추어 복싱을 관장하는 국제복싱협회(AIBA)가 부정과 부패의 온상으로 전락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아일랜드의 채점관인 시머스 켈리는 2011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랍 지역 대회에서 특정 선수가 이길 수 있도록 점수를 조작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구체적으로 제보했다.

켈리는 자신이 아는 동료 채점관의 경우 2013년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개최된 유럽 챔피언십에서 편파 판정을 유도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고 주장했다.

켈리는 지난해 4월 AIBA의 현 회장인 우칭궈에게 이같은 내용을 제보했으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향후 대회에서 채점권 배정을 받지 못하는 불이익뿐이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그는 "사람들은 혹시나 올림픽을 비롯해 다른 큰 대회에서 채점관 배정을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해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며 "또 그들이 속한 국가의 선수들이 승부조작의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침묵하는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또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가디언에 "일부 큰 대회에서는 시합의 절반 정도가 이미 결과가 정해진 상태에서 대회가 치러진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집단적인 침묵 속에 승부 조작은 만연해졌고, 이제는 지구촌에서 가장 큰 스포츠 이벤트인 올림픽에서마저 승부 조작을 우려할 수준에까지 이르렀다고 가디언은 진단했다.

가디언은 이어 내부자 증언을 토대로 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 승부 조작 수법이 훨씬 은밀해졌다고 전했다.

과거에는 수신호나 머리 동작 등이 활용됐다면 이제는 큰 대회가 개최되기 전에 심판진들이 미리 만나서 채점과 관련해 세부적인 계획을 짠다는 것이다.

또 AIBA에 충성도가 높은 심판진들만 골라서 특정 대회에 배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한 소식통은 "이제는 매우 조용하게 승부 조작이 이뤄지고 있다"며 "일부 시합은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역겨울 정도"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AIBA가 있다고 가디언은 꼬집었다.

한 소식통은 대만 출신의 우칭궈 AIBA 회장이 2013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AIBA 재정을 탕진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매년 예산 부족에 시달리게 된 AIBA가 자신들에게 뒷돈을 제공하는 국가의 선수들에게 유리한 판정이 나오도록 돕고 있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베네수엘라는 올림픽 선발전 개최권을 따내기 위해 AIBA에 약 45만 달러를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며 "베네수엘라가 이 대회에서 참가 선수 6명 중 4명이나 올림픽 티켓을 따낸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가디언이 언급한 이 대회는 지난달 베네수엘라 바르가스에서 열린 APB(AIBA 프로 복싱)/WBS(월드시리즈 복싱) 올림픽 선발전으로, 한국은 함상명과 신종훈이 모두 8강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한국 남자 복싱은 이보다 앞선 지난 3월 중국 첸안에서 열린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선발전에 이어 6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패자 부활전에서도 전원 낙마했다.

한국 남자 복싱이 침체기에 빠지기는 했으나 적어도 4~5명의 선수는 충분히 올림픽 본선에 진출할 것이라는 예상을 크게 뒤엎는 결과였다.

대회를 개최한 중국과 아제르바이잔이 거의 전 체급에서 올림픽 진출자를 배출하자 국제 복싱계에서는 AIBA가 이들 국가에 특혜를 준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반대로 한국이 승부 조작의 희생양이 됐다는 뒷말이 많았다.

가디언의 이번 보도는 이러한 심증에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할 만하다.

AIBA는 이러한 의혹을 근거 없는 루머라고 부인하며 "베네수엘라의 바르가스는 공정한 과정을 통해서 개최지로 선정됐으며, 개최비를 받는 것은 지구상 모든 스포츠가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당시 대회에서 약 60개의 시합이 벌어졌는데, 선수들을 비롯해 모든 참가자가 대회의 수준과 공정함에 찬사를 보냈다"고 덧붙였다.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chang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