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동메달 딴 적 있지만, 딸의 목에 금메달 걸어주고 싶다"

'엄마 검객' 남현희(35·성남시청)는 평소 걸음걸이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무릎 연골이 닳아 없어져 몸을 제대로 지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현희는 이런 무릎을 훈장이라 말한다.

그는 작은 키(157㎝)를 극복하기 위해 다른 선수들보다 배로 뛰면서 노력했고, 무릎이 탈 날 때까지 스피드를 키웠다.

그는 무릎을 펜싱과 맞바꿨다.

성남여고 재학시절 펜싱 유망주로 부상한 남현희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통해 올림픽 첫 출전의 꿈을 이뤘다.
남현희 / 연합뉴스 DB
남현희 / 연합뉴스 DB
당시 8위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고,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플뢰레 단체전에서 우승하며 세계 정상에 올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본인의 존재를 전 세계 스포츠팬들에게 각인시킨 대회였다.

그는 여자 플뢰레 개인전 결승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발렌티나 베찰리(이탈리아)에게 아쉽게 5-6으로 역전패 하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베찰리는 6개 하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올림픽 역사상 가장 많은 금메달을 획득한 여자 펜싱선수였는데, 남현희는 이런 선수를 만나 피를 말리는 명승부를 펼쳤다.

남현희는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뒤 선수 생활의 갈림길에 섰지만, 도전을 멈추진 않았다.

2011년 사이클 선수 공효석과 결혼해 2013년 딸 하이를 얻은 뒤에도 그는 계속 한국 펜싱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아기를 낳은 뒤 악력이 떨어져 검을 잡기 힘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났다.

그는 아이를 낳은 뒤 1년간 몸을 추스른 뒤 1년간 몸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다시 1년 반 동안 감각을 끌어올리며 실전 대회를 준비했다.

남현희의 땀방울은 결실을 보았다.

지난 3월 쿠바에서 열린 플뢰레 그랑프리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 티켓을 당당히 따냈다.

남현희는 4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한다.

한국 펜싱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남현희의 목표는 금메달이다.

그는 지난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올림픽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은 딴 적이 있는데,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라며 "딸이 어리지만, 메달 색을 구별한다.

딸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남현희는 리우올림픽 여자 플뢰레 개인 종목에만 출전한다.

올림픽 펜싱은 종목당 나라별 2명의 선수가 출전하는데, 출전선수 세계랭킹에 따라 대진이 나온다.

가령 32강에서는 올림픽 출전선수 중 세계랭킹 1위와 32위의 선수가 맞붙는다.

남현희는 현재 세계랭킹 14위이고, 올림픽 출전선수 중엔 9위다.

올림픽 대표자 회의에서 순위가 소폭 바뀔 여지가 있는데, 32강에선 미국의 징가 프레스콧(23·세계랭킹 11위)과 만날 가능성이 크다.

펜싱국가대표팀 여자 플뢰레 최명진 전담 코치는 "8강까지는 대진이 괜찮은데, 8강전에서 세계랭킹 1위 혹은 2위 선수와 만나야 한다"라며 "(남)현희가 1위 선수와의 승률이 워낙 낮기 때문에, 8강전을 최대 승부처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세계랭킹 1위는 이탈리아의 아리안나 에리고(28)다.

그는 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 플뢰레 단체 금메달과 개인전 은메달을 따냈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2013년, 2014년 개인전 금메달을 기록했고, 작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선 이 종목 단체전에서 금메달,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기록했다.

큰 키(180㎝)를 갖춘 데다 경험이 풍부하다.

세계랭킹 2위는 러시아의 인나 데리글라조바(26)다.

그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남현희는 최근 3차례 맞대결에서 2번 승리한 경험이 있다.

최 코치는 "에리고 보다는 데리글라조바가 올라오기를 기대하고 있다"라며 "8강 고비만 넘으면 어느 정도 메달 가능성이 밝아진다고 할 수 있겠다"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cycl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