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저하로 변화구도 위력 반감
89구, 예정 투구수 채운 건 성공

불의의 일격을 당하면 퍼뜩 정신을 차려 나머지 이닝을 실점 없이 역투하던 류현진(29·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왼쪽 어깨 수술의 후유증 탓인지, 640일 만에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선발 등판이라는 부담 탓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 수 있을 전망이다.

류현진은 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4⅔이닝 동안 홈런 1개 포함 안타 8개를 맞고 6실점 한 채 강판했다.

예정된 투구 수 90개에서 1개 모자란 89개를 던진 후였다.

타구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동료 외야수들의 실수 탓에 류현진의 실점은 고스란히 자책점이 됐다.

1회 선두 타자 멜빈 업튼 주니어에게 우중간 펜스를 넘어가는 솔로포를 얻어맞은 류현진은 공 10개로 이닝을 마무리한 3회를 제외하곤 매회 실점하며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빠른 볼의 구속이 기대를 밑돌았고 변화구의 제구도 마음대로 이뤄지지 않은 게 결정적이었다.

경기 초반 최고 시속 148㎞를 찍은 빠른 볼은 강판 무렵엔 140㎞로 떨어졌다.

류현진은 슬라이더 대신 시속 110㎞대 초반을 찍은 느린 커브를 주무기로 사용했지만, 큰 재미를 못 봤다.

직구 구속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그나마 통하던 130㎞대 체인지업의 위력도 반감됐다.

스트라이크 존을 구석구석 찌르는 빠른 볼과 예리한 슬라이더,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체인지업과 커브 등 4가지 구종으로 빅리그에서 2013∼2014년 류현진은 통산 28승(15패)을 수확했다.

시속 150㎞에 육박하는 빠른 볼이 중심을 잡고, 140㎞대 슬라이더와 130㎞대 체인지업, 120㎞대 커브 등 구종마다 다른 구속으로 타자를 잘 유혹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왼쪽 어깨를 수술한 뒤 1년 이상의 재활을 거쳐 마침내 이날 오른 빅리그 선발 등판에서 류현진의 구종별 변별력이 부족했다.

전반적으로 공이 다 느렸기 때문이다.

이날 가장 자신 있게 던진 빠른 볼과 체인지업이 난타를 당하면서 류현진이 설 자리도 좁아졌다.

5회에 허용한 결정적인 장타 2방은 모두 140㎞대 빠른 볼이었다.

류현진은 등판 전 8차례 마이너리그 재활 등판에서 제구력과 변화구 구사력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었다고 자평했다.

구속도 수술 전보다 그리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연 결과는 이런 기대에 못미쳤다.

투구 결과는 좋지 않았으나 류현진이 예정된 투구 수를 던진 건 다행스러운 대목이다.

투구 수와 투구 강도를 조절해가면서 통증을 느끼지 않고 임무를 완수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류현진의 부활 가능성을 엿볼 기회는 올스타 휴식기 이후 후반기 등판으로 미뤄졌다.

류현진은 물론 재활 프로그램을 짠 다저스 구단의 머릿속이 복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류현진이 다저스의 3선발 투수로 맹활약한 사실을 잘 아는 다저스 팬들은 경기 전 전광판으로 그의 이름이 호명될 때, 그리고 강판할 때 변함없이 우렁찬 박수로 류현진을 격려했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장현구 특파원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