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부러진 채 18홀 연장전에 플레이오프까지 치러

US오픈골프대회는 가혹한 코스 세팅으로 선수들의 인내심과 체력을 극한으로 몰아간다.

샷만 뛰어나서는 우승할 수 없는 대회가 US오픈이다.

115명에 이르는 역대 우승자는 모두 골프 실력 뿐 아니라 정신력도 다른 선수에 앞섰다.

미국 폭스 스포츠가 꼽은 'US오픈에서 멋진 우승 10선(選)'은 투지와 인내, 그리고 불굴의 의지로 끌어낸 우승이 대부분이다.

10대 멋진 우승 가운데 2차례는 타이거 우즈(미국) 몫이다.

그리고 필 미컬슨(미국)은 10대 멋진 우승의 조연으로 두 차례 등장한다는 점도 눈에 띈다.

가장 멋진 우승은 우즈가 세 번째 US오픈 정상에 오른 2008년 대회가 뽑혔다.

우즈는 당시 로코 미디에이트(미국)와 연장 19홀의 혈투를 치렀다.

끌려가던 승부를 벼랑 끝에서 뒤집었다.

4라운드에서 미디에이트에 1타 뒤지던 우즈는 18번 홀(파5)에서 버디를 잡아내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다.

18홀로 치러진 연장전에서도 우즈는 17번 홀까지 1타차로 뒤졌지만 18번 홀에서 또 한 번 버디 쇼를 연출했다.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온 우즈는 플레이오프로 치러진 추가 연장전에서 끝내 미디에이트를 따돌리고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일요일 아닌 월요일에 치르는 US오픈 연장전은 TV 중계 시청률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우즈가 극적 반전 드라마를 연출한 당시 연장전은 미국 내 시청률 7.6%로 일요일 4라운드 시청률 8.5%보다 1.1% 포인트밖에 줄지 않았다.

월요일에 열린 골프 중계 시청률로는 사상 최고였다.

더 놀라운 것은 우즈가 왼쪽 다리 전방십자인대가 끊어지고 다리뼈에 2개나 금이 간 상태에서 경기를 치렀다는 사실이다.

우즈는 경기 내내 다리를 절뚝거리며 통증을 참으려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이 여러 차례 TV 중계 화면에 잡혔다.

하지만 우즈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우승 직후 수술대에 오른 우즈는 이후 한 번도 메이저대회 우승을 못 했다.

우즈가 그런 엄청난 부상에도 경기를 강행한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는지는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다.

US오픈에서 두 번째 멋진 우승은 1999년 '멋쟁이 골퍼' 페인 스튜어트(미국)가 주인공이다.

당시 42살이던 스튜어트는 신예 미컬슨과 접전 끝에 정상에 올랐다.

최종 라운드 17번홀에서 버디를 잡아 1타차 선두로 나선 스튜어트는 18번 홀에서 8m 파퍼트를 넣어 기적 같은 우승을 완성했다.

우승 직후 스튜어트가 미컬슨의 얼굴을 감싸 쥐며 위로의 말을 건네는 순간은 US오픈 사상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스튜어트는 US오픈에서 우승한 지 넉 달 만에 비행기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뒤늦게 맞은 인생 최고의 순간과 달리 너무나 빨리 찾아온 비극적인 죽음이었다.

1950년 벤 호건(미국)의 US오픈 우승도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겼다.

그는 16개월 전 자동차 사고를 당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

온몸이 다 부서져 만신창이가 된 호건은 간신히 일어나 걸어 다닐 정도였지만 US오픈 출전을 강행했다.

우승은커녕 1라운드도 다 마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호건은 4라운드를 공동 선두로 마쳤고 연장 18홀을 더 치러 끝내 우승했다.

호건의 믿어지지 않는 투혼과 재기 스토리는 할리우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1960년 아놀드 파머(미국)의 최종 라운드 7타차 역전은 US오픈 사상 네 번째로 멋진 우승으로 선정됐다.

파머는 4라운드 초반 7개 홀에서 버디 6개를 몰아쳐 65타를 뿜어냈다.

파머에 7타 앞선 채 최종 라운드를 시작한 마이크 수책은 75타를 친 끝에 3위로 밀려났다.

파머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한 선수는 당시만 해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아마추어 잭 니클라우스(미국)였다.

1, 2라운드에서 니클라우스와 동반 플레이를 치른 호건은 "이 어린 친구가 곧 US오픈에서 10타차 우승을 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호건의 예언은 곧 현실이 됐다.

니클라우스는 2년이 지난 1962년 프로 데뷔 첫해에 US오픈 왕좌에 올라 새로운 골프 황제의 탄생을 알렸다.

니클라우스는 최종 라운드를 파머와 공동 선두로 마친 뒤 18홀 연장전에서 3타차 완승을 거뒀다.

니클라우스는 이후 3차례 US오픈 우승을 포함해 17차례 메이저대회 정상에 올랐다.

니클라우스의 첫 메이저 우승이자 첫 US오픈 정상의 무대는 올해 US오픈을 치르는 오크몬트 골프클럽이었다.

오크몬트 골프클럽은 이븐파만 쳐도 우승한다는 난코스 중의 난코스다.

코스 세팅이 가혹한 US오픈 개최지 가운데서도 유난히 어려운 코스가 오크몬트 골프클럽이다.

하지만 1973년 US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당시 26살 청년 조니 밀러(미국)는 63타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최종 라운드 18홀 동안 밀러는 단 29번 퍼터를 사용했을 뿐이다.

그나마 17, 18번 홀에서는 버디 퍼트가 홀을 돌아나왔다.

2006년 US오픈은 우승자보다 준우승자가 더 유명해진 대회다.

미컬슨은 최종 라운드 17번 홀까지 2타차 선두를 달리고 있어 그해 마스터스에 이어 메이저대회 2연승을 눈앞에 뒀다.

18번 홀에서 미컬슨은 안전하게 3번 우드로 티샷하라는 캐디의 조언을 뿌리치고 드라이버를 휘둘렀다가 더블보기를 적어냈다.

미컬슨은 "내가 한 짓을 믿을 수 없다.

난 바보짓을 했다"며 자책했으나 우승 트로피에는 이미 죠프 오길비(호주)의 이름이 새겨진 뒤였다.

미컬슨은 아직도 US오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해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완성하지 못했다.

1990년 US오픈 우승자 헤일 어윈(미국)의 노익장도 팬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사건이다.

당시 45세이던 어윈은 4라운드 18번 홀에서 13m 버디를 잡아내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다.

버디 퍼트를 성공한 어윈이 그린을 마구 내달리며 갤러리와 닥치는 대로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영상은 올드팬들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이튿날 18번 홀 연장전에서 승리한 어윈은 US오픈 세 번째 우승컵과 함께 지금도 깨지지 않는 최고령 챔피언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1982년 페블비치에서 열린 US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톰 왓슨(미국)은 US오픈 역사상 가장 멋진 샷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17번홀(파3)에서 티샷을 깊은 러프에 빠트린 왓슨은 파세이브도 힘겨운 난관에 빠졌다.

그러나 러프에서 쳐낸 두 번째 샷은 거짓말처럼 홀에 빨려 들어가 버디가 됐다.

이 버디 한방으로 왓슨은 니클라우스를 따돌리고 US오픈을 제패했다.

왓슨은 훗날 "내 평생 가장 멋진 샷"이라고 말했다.

우즈가 메이저대회 사상 가장 압도적인 경기를 펼친 2000년 US오픈도 역대 멋진 우승의 한 장면에 포함됐다.

우즈는 2위를 무려 15타차로 따돌렸다.

우즈는 4라운드 합계 12언더파를 적어냈지만 다른 선수는 단 한 명도 언더파 스코어를 기록하지 못했다.

우즈는 이 대회 우승에 이어 디오픈, PGA챔피언십, 그리고 이듬해 마스터스까지 전대미문의 메이저대회 4연승이라는 엄청난 기록까지 세웠다.

우즈가 외계인이라는 소문이 난 계기였다.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