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은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와 바둑 대결을 벌이는 동안 불굴의 투혼은 물론이고 인간만이 갖출 수 있는 ‘품격’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이 9단은 3연패로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도 기자회견장에 나와 꿋꿋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4국에서 백돌로 이기고 나서 승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5국에서 흑돌을 자청했다.

체스 세계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는 1997년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와의 대결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 9단은 3연패를 당한 뒤에도 동료 기사들과 복기하고 연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4국에서 알파고가 ‘떡수’(악수를 이르는 바둑계 은어)를 남발할 때도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국에 임했다.

본래 바둑은 예와 도를 중시하는 게임이다. 이현욱 8단은 “바둑계는 경쟁이 치열하지만 처음 입문할 때부터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를 배운다”며 “속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표현을 잘 안 하고 이겨도 패자(敗者)의 마음을 헤아려 크게 세리머니를 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은 하수(下手)”라며 “이 9단이 멘탈이 강하지 않았다면 저 자리에 올랐겠느냐”고 했다.

김보영/최만수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