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그립을 끼우는 ‘집게 그립’
오른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그립을 끼우는 ‘집게 그립’
때아닌 ‘소수파 그립(grip)’ 바람이다. 적어도 최근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선 그렇다. ‘롱퍼터의 달인’ 애덤 스콧(호주)이 짧은 퍼터로 전향하고서도 올 들어 가장 먼저 2승째를 거머쥔 게 불을 붙였다. 그는 오른손 엄지와 검지, 검지와 중지 사이에 그립을 끼우는 ‘집게 그립’을 쓴다. 스콧이 이 그립으로 ‘앵커링(퍼터 그립을 몸에 대는 방식)’을 금지한 룰과의 악전고투를 이겨낸 ‘스토리’가 집게 그립 주가까지 밀어붙였다. 이에 앞서 혼다클래식 커트 탈락 등 올 들어 부진한 세계랭킹 3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역그립(cross-handed grip)’으로 퍼터 잡는 방식을 바꿔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WGC캐딜락챔피언십에서 ‘노장’의 존재감을 확인시킨 필 미켈슨(미국)은 한술 더 떴다. 집게 그립과 일반 그립을 오가는 ‘스위칭 그립’을 WGC대회에서 처음 선보인 것이다. 스위칭 그립은 긴 거리 퍼팅은 일반 퍼팅으로 하고, 짧은 거리 퍼팅은 집게 그립으로 바꾸는 혼용 방식을 말한다. 리디아 고(19)가 즐겨 쓰는 방식이다.
장거리에서는 일반그립(오른쪽), 짧은 퍼팅을 할 때는 손방향을 반대로 잡는 ‘역 그립’.
장거리에서는 일반그립(오른쪽), 짧은 퍼팅을 할 때는 손방향을 반대로 잡는 ‘역 그립’.
일종의 변형그립인 두 그립은 모두 손목을 억제해 방향성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쇼트 퍼팅이 강점이다. 반면 손목 사용이 제한돼 긴 거리 퍼팅에선 약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프로들도 사용하는 이가 손꼽을 정도로 소수파 그립으로 분류돼 온 배경이다. 오랜 ‘집게 그립파’인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나 대니 리(미국)가 우승할 때 반짝 관심을 모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다만 역그립은 박인비(28·KB금융그룹)와 리디아 고 등 여자프로골프 세계랭킹 최강자들에 이어 ‘차세대 골프황제’ 조던 스피스(미국)도 사용하면서 소수파 지위를 조금씩 벗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그립 변경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린 경사를 읽는 능력과 스트로크 기본기가 잘 갖춰진 프로들은 적응이 빠른 편이지만, 아마추어들에겐 오히려 혼란 기간이 더 길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중수 KPGA 프로는 “사람마다 안정감을 느끼는 퍼터와 퍼팅 방식이 다 다르다”며 “최악의 퍼팅 부진이 아니라면 분위기에 휩쓸려 그립을 바꾸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기존 그립을 더 정교하게 다듬는 게 효율적이라는 얘기다.

프로들도 퍼터와 그립 방식을 자주 바꾼다. 하지만 실험에 그칠 뿐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사례는 드물다. 최나연(29·SK텔레콤)과 안신애(26·해운대비치골프앤리조트)도 한때 분위기 전환을 위해 역그립으로 바꿨다. 하지만 지금은 정상 그립을 쓴다. 흐트러진 감각을 되찾기 위해 눈을 감고 퍼팅을 하거나, 한 손 퍼팅을 연습하듯 분위기 전환용으로 사용한 셈이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