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경(26)이 연장전 ‘멘붕(멘탈붕괴)’에 빠졌다. 지난 1년간 세 차례 연장전에 나가 패배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서희경은 25일(한국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 그레이사일로GC(파71)에서 열린 미국 LPGA투어 매뉴라이프파이낸셜클래식 마지막날 4타를 줄여 최종합계 16언더파 268타로 브리타니 랭(미국), 박인비(24), 최운정(22)과 연장전에 돌입했으나 연장 세 번째 홀에서 랭에게 져 준우승에 머물렀다.

◆두 차례 이글 기회 놓쳐

연장전은 18번홀(파5·471야드)에서 승부가 날 때까지 치렀다. 서희경에게 유리한 상황이 조성됐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첫 번째 연장에서 서희경은 우드로 ‘2온’에 성공했고 홀까지 거리도 2.5m였다. 랭은 4m 이글 찬스였다. 그러나 둘 다 내리막 슬라이스 라인에서 볼이 오른쪽으로 흐르고 말았다. 박인비는 그린 에지에서 어프로치샷을 1m 지점으로 보내 버디를 잡았다. 국산 분홍색 ‘볼빅 컬러볼’을 사용하는 최운정은 버디 퍼트를 실패해 가장 먼저 탈락했다.

연장 두 번째 홀에서 서희경은 다시 우드로 ‘2온’에 성공하며 5m 이글 기회를 잡았다. 박인비와 랭은 두 번째 샷이 그린 오른쪽 러프로 갔다. 서희경의 이글 퍼팅은 내리막 슬라이스 라인을 타고 가다가 홀 바로 앞에서 멈췄다. 랭은 1.5m 버디를 성공시키며 승부를 연장 세 번째 홀로 끌고 갔다. 박인비는 2.5m 버디퍼트가 빗나가며 두 번째 탈락자가 됐다.

연장 세 번째 홀에서 랭의 두 번째 하이브리드샷이 짧아 그린 왼쪽 벙커에 빠졌다. 서희경은 이를 보고도 그동안 사용했던 우드 대신 4번아이언을 빼들었다. 두 차례 우드샷이 모두 홀을 지나쳐 내리막 슬라이스 라인에서 퍼팅하게 되자 한 클럽 짧게 잡아 오르막 퍼팅을 노렸다. 그러나 벙커에 빠져 랭과 비슷한 위치에 멈췄다.

서희경은 벙커샷을 홀 아래 2m 지점에 떨궈 오르막 퍼팅을 남겨뒀다. 랭은 1.5m 내리막 퍼팅 기회를 만들었다. 서희경의 버디 퍼팅은 홀을 외면했고 랭은 침착하게 버디를 집어넣어 승부를 결정지었다.

◆네 차례 모두 패배 ‘연장 울렁증’

서희경은 국내에서 2008년 6승, 2009년 5승 등 2년간 11승을 거두며 맹활약을 펼쳤다. 게다가 2010년 3월에는 초청선수로 출전한 KIA클래식에서 우승하며 지난해 미국 LPGA투어에 진출했으나 2년3개월째 우승컵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서희경은 지난해 US여자오픈 3개홀 연장전에서 유소연에게 진 데 이어 올 시즌 개막전인 ISPS한다 호주여자오픈 연장전에서 제시카 코르다(미국)에게 패했다.

서희경은 국내에서도 2009년 오리엔트차이나레이디스오픈 연장전에서 유소연에게 패한 바 있다. 프로 데뷔 이후 가진 네 차례 연장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해 ‘연장 울렁증’이 생길 만하다. 서희경은 “나비스코챔피언십 이후 침체됐다가 최근 자신감을 되찾았다. 비록 오늘 이기지 못했지만 다시 더 좋은 기회가 나에게 올 것”이라고 말했다. 미 LPGA투어에서 최다 연장전 패배 기록은 투어 최다승(88승) 기록 보유자인 캐시 휘트워스다. 그는 연장에서 8승20패를 기록했다. 최다 연장 승리자는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다. 22차례 연장전을 치러 16승6패의 전적을 남겼다. 박세리는 6차례 연장전에서 단 한 차례도 지지 않았다.

◆173번째 대회 만에 첫승

데뷔 후 첫 연장전에서 3명의 코리안을 물리친 랭은 173번째 대회 만에 첫승의 감격을 누렸다. 우승상금은 19만5000달러. 랭은 18번홀에서 1.5m 짧은 버디 퍼트를 왼쪽으로 당겨치면서 연장을 허용했다. 그는 “캐디를 한 오빠(루크) 덕에 침착하게 연장전을 치를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스테이시 루이스(미국)와 유소연(23)은 합계 15언더파 269타로 공동 5위에 올랐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