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의 요정' 김자영 "첫 승 떡값만 1000만원 나갔어요"
지난 29일 늦은 오후,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빌딩을 찾은 김자영(21)은 국내 여자프로골프 2주 연속 우승의 기쁨보다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두산매치플레이챔피언십에서 6라운드를 치른 뒤라서인지 얼굴이 핼쑥해보였다. 갸날픈 체구는 어디서 그런 파워와 정신력이 뿜어져 나오는지 모를 정도다. 그러나 김자영은 강단이 있다. 어릴 적부터 보약이란 보약은 안 먹어본 게 없다.

“초등학교 때 수영을 했는데 너무 힘이 들어 살이 빠지니까 한의사인 아버지(김남순)가 자라 등 몸에 좋다는 것은 다 해주셨어요. 녹용은 기본이고요. 키 크는 약, 살찌는 약도 많이 먹었지요.”

그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이 들면 잘 먹지 않지만 요즘 들어 체력유지를 위해 많이 먹으려고 하는 편이다.그래도 살은 찌지 않는 체질이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초밥. 정통 초밥을 하는 일식당을 즐겨 찾는다. “올초에 클럽(혼마)을 제작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해 평범한 초밥집에 갔는데 너무 맛있더라고요. 엄청 먹었지요.”

“일식을 좋아하니 일본 투어에 진출하면 좋겠다”고 했더니 “세계적인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에요. 미국 투어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뤄 우승하고 싶어요. 그동안 우승이 없어 해외 진출을 생각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체력적인 보완과 기술적인 부분이 보완되면 미국으로 바로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2주 연속 우승의 원동력으로 ‘동계훈련을 통해 끌어올린 체력’을 꼽았다. 거리도 크게 늘었다. 지난 2년간 그의 평균 드라이버샷은 240야드 정도였다. 올해는 4개 대회에서 평균 260야드나 나간다.

같은 매니지먼트사에 소속돼 있는 김대섭 프로의 조언을 통해 ‘퍼팅 셋업’을 바꾼 것도 주효했다.

“과거에는 머리가 우측으로 기울어져 중심이 오른쪽에 남은 상태에서 퍼팅을 했어요. 어프로치샷도 마찬가지였죠. 그러다보니 피니시 때 기울어져 올라가면서 볼에 힘 전달이 잘 안됐어요. 오르막 퍼팅 때는 짧았고 내리막 퍼팅 때는 롤링(rolling·구름)이 좋지 않았으며, 훌쩍 지나칠 때도 많았어요.”

그는 ‘김자영2 팬 후원회’도 거느리고 있다. 회원이 하루에도 수백명씩 늘고 있다. 회원끼리는 이 모임을 ‘자몽회’라고 부른다. 자몽은 김자영의 별명이다. “친구들이 자몽에이드 TV 광고를 보고 저랑 이미지가 딱 맞다며 붙여줬지요. ‘삼촌팬’들이 이를 알고 저를 ‘자몽 프로’라고 불러요.”

2주간 받은 상금 2억원에다 후원사 넵스로부터 받은 보너스 1억원 등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더니 “지난해 차는 샀고 고생한 가족과 함께 시즌 끝나고 해외든, 국내든 여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자프로들은 우승하면 그 다음주 떡을 돌리는 관행이 있다. “‘떡값’으로 얼마나 들었나”하고 물었더니 “첫승할 때 여기저기 떡을 너무 돌렸더니 1000만원가량 쓴 것 같다. 다음주 대회 때는 조금 줄여야겠다”며 웃었다.

딸 뒤엔 '골프 대디'…스포츠 한의학 연구하며 지원

한의사 김남순 씨 "우승 예감했죠"

김자영 부친은 서울 사당동에서 화남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의사 김남순 씨(52)다. 딸을 향한 그의 열정은 박세리 신지애 등 한국 여자프로골프를 이끌어온 ‘골프 대디’의 맥을 잇고 있다.

김씨는 1990년 독학으로 골프에 입문했다. 7~8년 전에 3언더파 69타를 쳐 자신의 베스트 스코어를 냈다. 골프 관련 서적과 언론 매체에 나온 기사,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 등을 섭렵하며 실력을 닦았다. 그동안 스크랩해둔 것이 잡지 분량으로 6권이 넘는다. 이를 그대로 딸에게 전수했다. 딸이 선수가 된 뒤에는 대회장 야디지북을 직접 만들어주기도 했다. 퍼팅, 그린적중률, 벙커세이브율, 파5홀 스코어 등 각종 기록도 손수 만들어 전달했다.

전공을 살려 스포츠 영양학, 갈증해소법, 추나요법 등의 연구도 거듭했다. 그는 “신지애의 부친(신제섭)이 딸을 위해 쏟으신 열정을 보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을 앞서 하셨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자영이는 배울 때 매우 성실하게 임한다. 뭘 하나 배워도 흡수 능력이 뛰어나고 잘 받아들인다”며 “그러나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올해 딸 우승을 예감한 것은 지난 3월이었다. “호주 전지훈련을 마치고 온 딸을 데리고 필드에 나갔는데 드로와 페이드를 높고 낮게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벙커나 위험지역을 피해 좌우로 휘어지게 치는 것을 보고서 ‘올해 우승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글=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 / 사진=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