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전날엔 반드시 8시간 숙면을 취합니다. 대회 때 점심으론 8번홀과 13번홀에서 바나나를 한 개씩 먹어요. "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투어에는 조윤지(19 · 한솔) 허윤경(20 · 사진) 표수정(21 · 이상 하이마트) 이정민(18 · 삼화저축은행) 이미림(19 · 하나금융) 등 특출한 신인들이 즐비하다. 이 중 허윤경은 롯데마트여자오픈에서 연장전 끝에 2위를 차지하며 신인왕 후보로 떠올랐다. 독특한 루틴(routine · 일정한 행동 패턴)과 늘 할 수 있다는 '자기 최면'이 강점으로 꼽힌다.

허윤경은 초등학교 4학년이던 2000년 취미로 골프를 시작한 어머니(권옥련)의 손을 잡고 골프연습장에 갔다가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1년 뒤 재미 삼아 출전한 첫 대회에서 97타라는 깜짝 스코어를 기록했다. 경기 자체의 긴장감과 흥분감이 너무 좋았다고 한다. 2003년 서문여중에 입학하면서 골프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허윤경은 큰 키(171㎝)와 긴 팔다리 등 타고난 신체조건을 활용,아마추어 무대에서 이름을 떨쳤다.

2007년부터 2년 동안 국가대표로 활약한 뒤 지난해 KLPGA 2부투어에서 뛰었고 11월 열린 시드순위전에서 11위에 올라 올 시즌 KLPGA투어 풀시드를 확보했다.

허윤경은 시즌 개막전인 김영주골프여자오픈에서는 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러나 두 번째 대회인 롯데마트여자오픈에서는 바람 방향과 세기,그린 스피드,경기 흐름 등에 빠른 적응력을 보였다. 그는 "선배들보다 대회 경험이 적기 때문에 부담 없이 경기를 치렀다"며 "한홀 한홀 열심히 풀어나가려고 한 게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허윤경은 대회 때 자신만의 루틴을 꼭 지킨다. 대회 전날 8시간 숙면을 취하고 대회장에는 티오프 50분 전에 도착한다. 아침밥은 골프장이 아닌 밖에서 먹는다. 퍼트 연습은 15분,샷 연습은 50개를 넘지 않는다. 라운드 때 점심 메뉴는 늘 소화가 잘되는 바나나다. 라운드가 끝난 후 복기하는 차원에서 40분 정도 연습퍼트를 하고 연습볼을 친 뒤 숙소로 돌아간다.

4년 전 권성호 서울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에게 일정한 습관을 통해 라운드의 안정감을 강화하는 법을 배운 뒤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허윤경은 "대회를 잘 치르다가도 마지막에 무너진 경험이 적지 않았다"며 "지금도 권 교수님을 찾아뵙고 전화 상담을 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또 대회 때 스윙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리듬에만 신경 쓴다. 모든 것이 패턴화돼 있어 샷 실수가 있더라도 금세 자신만의 스윙을 할 수 있다. "어떤 선수들은 홀이나 상황에 따라 스윙이 달라질 때가 있어요. 저는 경기가 잘 풀리는 날이든,안 풀리는 날이든 일정해요. 전체적인 템포가 빨라지거나 느려지지 않고 일정한 것이 장점이죠."

허윤경은 KLPGA투어에서 활약 중인 동갑내기 친구 유소연(20 · 하이마트) 최혜용(20 · LIG)에 비해 두 해 정도 프로 데뷔가 늦었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올 시즌 목표로 몇 승을 올리겠다고 정한 것도 없다. 대회마다 '톱10'에 들겠다고만 다짐한다. "제 라이벌은 저 자신뿐입니다. 우승 기회가 왔을 때는 꼭 잡아야죠."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