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최대어로 꼽혔던 김태균(27.지바 롯데)와 이범호(28.소프트뱅크)가 나란히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하면서 해외 진출 바람이 다시 거세게 불고 있다.

둘은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홈런 3방씩을 터뜨리면서 일본 관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한국인이 구단주로 있는 롯데 마린스(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와 소프트뱅크(재일동포 3세 손정의 회장) 유니폼을 입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미 일본에서 뛰고 있는 이승엽(33.요미우리), 임창용(33), 이혜천(30.이상 야쿠르트)까지 합쳐 내년에는 한국 선수가 양대리그에서 5명이나 활약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팬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포스트 이승엽'의 선두주자였던 김태균이 롯데로부터 3년간 총액 7억엔을 받은 것은 '당연하다'고 바라보면서도 김태균보다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이범호가 3년간 최대 5억엔을 받은 것을 두고 '놀랍다'는 반응이 많다.

특히 이범호의 일본 진출은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국내에서 초특급 스타가 아니었더라도 일본에 대접을 받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선수들에게 심어줬다.

지난해에는 왼손투수 이혜천(30)이 2년간 260만달러라는 섭섭하지 않은 대우를 받고 야쿠르트로 옮겼다.

이혜천은 두산 베어스에서 뛴 10년간 단 한번도 시즌 10승을 넘지 못했지만 왼팔이라는 희소성을 살려 야쿠르트의 볼펜 투수로 자리를 잡았다.

해외에서 뛰겠다는 강한 의지를 지니고 열심히 준비한다면 시장 상황에 따라 대한해협을 건너는 게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는 뜻이다.

WBC라는 큰 무대에서 강인한 인상을 남기면 해외로 가는 데 큰 이점을 안는다는 점도 재입증됐다.

작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일궈내고 WBC에서 준우승을 이끈 류현진(한화), 김광현(SK), 윤석민(KIA) 등 투수 삼총사는 FA 자격만 취득하면 언제든 국내를 떠날 수 있는 잠재적인 해외파 후보다.

류현진에 대해서는 뉴욕 양키스가 일찍부터 관심을 보이는 등 미국과 일본의 스카우트가 예의주시하고 있고 왼손 투수 김광현도 마찬가지다.

하라 다쓰노리 요미우리 감독도 한일 프로야구챔피언십에서 4주 군사훈련으로 빠진 오른손 투수 윤석민을 이례적으로 계속 언급하고 관심을 나타냈다.

요미우리처럼 장기적인 안목을 갖춘 일본 구단은 1년에 수시로 스카우트를 한국에 보내 관심 대상에 올려놓은 투수들의 기량을 계속 조사하고 있다.

대어급 스타는 물론 이혜천과 이범호 등 '보통' 선수들의 일본 진출은 곧 선수들의 연쇄 탈출로 이어져 국내프로야구에 스타가 없는 '공동화'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위기감을 안겨준다.

연봉과 각종 대우 조건에서 한국보다 나은 일본을 택하는 건 선수들의 권리다.

반면 이들을 한국에 앉혀 팬들의 사랑을 유도해야 하는 건 국내 구단의 책임이다.

MBC TV에서 해설하면서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을 맡은 허구연씨는 20일 "지금 상태로 내버려둬서는 안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허 위원장은 "일본의 고교야구팀이 4천개가 넘지만 주로 야구를 즐기는 특별활동 수준이다.

정작 포지션별로 경쟁력 있는 선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게 한국 선수들의 영입으로 증명됐다"면서 "메이저리그에 선수를 수급하는 도미니카공화국처럼 한국야구의 위상이 떨어져서는 절대 안된다"고 설명했다.

허 위원장은 "해외에 나가겠다는 선수 의지를 꺾는 것보다 그들이 국내에 선뜻 남을 수 있도록 환경을 먼저 조성해야 한다"면서 "각종 제도와 인프라를 개선하고 구단의 수익구조를 바꾸는 등 일본과 차이가 나는 시장 규모 차이를 좁히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어 "8개 구단이 지금은 '우승'이라는 목표에 너무 천착하고 있지만 저변 확충과 국내 선수 보호 방안 등을 머리를 맞대고 심각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