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마,내가 하고 있는 일과 해야 할 일들.나에게 뭐가 필요한지를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분명 좋은 날이 올거야(중략).실망감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낙오자는 정중히 사양하자.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얼짱 골퍼' 최나연(22 · SK텔레콤)의 미니홈피 한 대목이다. 지난해 미국LPGA투어에 데뷔한 이후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고개를 떨어뜨려야 했던 기억에 얼마나 가슴앓이가 심했는지 짐작이 간다. '만년 2위' 딱지를 붙이고 다니던 최나연이 세계 톱랭커 20명이 출전한 미LPGA투어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그토록 바라던 생애 첫 우승컵에 키스하며 '2위 징크스'를 떨쳐버렸다.

최나연은 21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토리파인즈GC 남코스(파72)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라운드에서 1언더파를 쳐 4라운드합계 16언더파 272타로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 '루키'로 미LPGA 무대에 나선 최나연이 55번째 투어 대회 출전 만에 거둔 감격의 첫 승이다. 이로써 한국 선수들은 미LPGA투어 통산 82승째를 합작하게 됐다. 미야자토 아이(일본)가 선두에 1타 뒤진 2위,이날 2타를 잃은 신지애(21 · 미래에셋)가 3위를 각각 기록했다.

신지애와 함께 챔피언조로 나선 최나연은 6번홀(파5)에서 이글을 기록할 때까지 2위와 무려 7타차나 벌리며 질주했다. 하지만 9번홀부터 연속 세 홀 보기를 범한 데 이어 15번홀에서도 파퍼트를 놓쳤고 앞조의 미야자토는 16번홀(파3)에서 버디를 낚으면서 1타차 2위로 밀려 악몽이 재현되는 듯했다. 승부처가 된 18번홀(파5 · 길이498야드).박빙의 선두를 달리던 미야자토가 두 번째 샷을 물에 빠뜨리면서 보기로 경기를 마쳤다. 순식간에 동타가 된 상황에서 최나연도 공격적으로 나갔다. '2온'을 노리고 유틸리티클럽으로 친 두 번째 샷은 그린 오른편 프린지에 멈췄고,차분하게 1.2m 거리의 버디 퍼트를 성공하면서 첫 승의 드라마를 완성했다.

최나연은 국내 무대에서 3승을 거두고 2007년 9월 미국으로 건너갈 때만 해도 탄탄한 기본기에 '얼짱'으로 불릴 정도의 상품성도 갖춘 유망주였다. 그러나 우승과는 인연이 멀었다. 또래의 지은희(23 · 휠라코리아) 박인비(21 · SK텔레콤) 김인경(21 · 하나금융) 등이 우승 샴페인을 터뜨릴 때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눈물의 샷을 날려야만 했다. 지난해에만 2위를 두 차례 하고 지난 3월 마스터카드 클래식에서도 2라운드까지 공동 선두를 달리다가 마지막날 5타를 잃어 미끄러졌다. 새침한 성격의 최나연은 지난 5월 코닝클래식 이후 부모가 귀국한 뒤 끊임없는 자기 암시를 통해 자신감을 불어넣었다고 한다. 최나연은 "그동안 우승하지 못해 많이 속상하고 미국에 건너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내년에 삼성월드챔피언십이 없어진다는 얘기가 들리는데 꼭 대회가 다시 열려 '디펜딩 챔피언'으로 출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