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프로야구 타격 1위 홍성흔(롯데)이 지명타자 포지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1999년 이후 10년 만에 3할7푼이 넘는 고타율 타격왕을 노리는 홍성흔(현재 0.374)은 지명타자로 나서면서 안타 수가 증가했다. 수비에 대한 부담이 없어져 타석에서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두산의 김경문 감독은 한국의 대표적인 3루수 김동주의 공격력 향상을 위해 그를 지명타자로 전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22일 19호 대타홈런을 날리며 이 부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재주(KIA)는 최근 지명타자로 KIA의 1위 수성에 버팀목이 되고 있다. 막판으로 치닫고 있는 프로야구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는 지명타자의 세계를 알아봤다.

지명타자는 수비는 하지 않고 투수 대신 타격만 하는 타자다. 국내에서는 프로야구는 물론 대학,실업야구에서도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아메리칸리그,일본에서는 퍼시픽리그만 지명타자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박찬호가 뛰었던 LA 다저스와 선동열이 유니폼을 입었던 주니치 드래건스가 각각 속한 내셔널리그와 센트럴리그에서는 지명타자가 없어서 두 선수 모두 방망이를 휘두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명타자제도를 처음으로 선보인 곳은 1973년 미국 메이저리그의 아메리칸리그였다. 당시 아메리칸리그는 내셔널리그에 비해 좋은 투수가 많아 '투고타저' 현상이 나타났고 공격적인 야구를 선호하는 팬들은 아메리칸리그를 외면했다. 아메리칸리그는 등 돌린 팬들을 되돌리기 위해 타격이 약한 투수 대신 수비는 다소 약하더라도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를 한 명이라도 더 기용하기 위해 지명타자제도를 마련했다. 1973년 4월6일 매사추세츠 주의 펜웨이파크에서 벌어진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의 개막전에서 양키스의 론 블롬버그가 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지명타자로 타석에 섰다.

지명타자제도를 운영하는 경기에 투수가 타석에 서는 경우도 있다. 한국야구위원회의 야구규칙 6조에 의하면 '지명타자가 수비에 나갔을 때 지명타자의 타순은 변경되지 않고 그 자리에 투수가 들어간다'고 규정돼 있다. 경기 후반 대타를 많이 기용하고 대타가 수비를 못할 경우 그 수비 위치에 지명타자가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럴 경우 투수가 방망이를 잡을 수밖에 없다. 지난 6월25일 SK의 에이스 김광현이 타자로 나선 진풍경이 연출된 것도 이 때문이다.

역대 국내 야구의 최고 지명타자로는 양준혁(삼성)이 꼽힌다. 그는 포지션별 최고 선수를 선정하는 골든글러브를 지명타자로 4번 수상했고 역대 최다 홈런(350개) 기록 보유자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김기태(요미우리 타격 코치)도 지명타자로 골든글러브를 4회 수상했고 올스타 베스트에 7번 뽑혔다. 백인천(SBS 해설위원)은 1982년 지명타자로 뛰며 전무후무한 4할대 타율(0.412)을 기록했다. 지난 7월 올스타전에서 해태 타이거즈 '레전드 올스타'에 지명타자로 선정된 김봉연(극동대 교수)은 원년(1982) 홈런왕이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