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기만 하면 세계신기록을 쏟아내는 지구상 최고 스프린터 우사인 볼트(23.자메이카)가 육상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벼락 맞은 괴물'의 역주에 하늘도 놀란 판이다.

볼트의 상대는 이제 '외계인'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앞으로 단거리 세계기록은 볼트가 등장하기 이전과 이후로 확실히 나뉠 것 같다.

볼트는 21일 새벽(한국시간) 독일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에서 끝난 제12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200m 결승에서 19초19라는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7일 남자 100m 결승에서 9초58이라는 세계신기록으로 정상을 밟았던 터라 이날 레이스는 시작 전부터 볼트의 우승은 떼어놓은 당상처럼 여겨졌고 세계신기록 달성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2007 오사카 세계대회에서 이 종목을 제패한 타이슨 게이(27.미국)가 사타구니 통증을 이유로 결장한 탓에 기록 단축을 위한 마땅한 경쟁자가 없었기에 가능성은 반반이었다.

게다가 볼트가 전날 "올해 100m에 집중하다보니 200m는 연습을 많이 하지 못했다"며 신기록 수립에 비관적인 태도를 보여 전망을 어둡게 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폭발적인 학다리 주법으로 예상밖의 레이스를 펼쳐 온 볼트는 자신이 원래 시작했던 주종목 200m를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작년 베이징올림픽 궈자티위창(國家體育場) 트랙에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마이클 존슨이 작성한 200m 세계기록(19초32)을 0.02초 줄여 12년 만에 신기록의 주인공이 된 볼트는 이날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승부를 건 뒤 후반 질풍같은 스퍼트로 끝내는 전략을 써 19초19를 찍고 자신의 기록을 0.11초나 앞당겼다.

결승선 30m를 남겨두고 전광판에 '16(초)'이라는 숫자가 켜졌고 10m를 줄일수록 19(초)에 가까워갔다.

마침내 19초19로 공식기록이 확인되자 올림피아슈타디온에 있던 7만여 팬과 취재진은 누구랄 것 없이 환호하고 갈채를 보냈다.

산술적으로 100m를 9초6 이하로 달려야 19초19를 찍을 수 있다.

100m에서 이미 9초58을 찍은 볼트였기에 가능할 수도 있으나 로켓 같은 속도를 100m 더 유지한다는 건 초인적인 능력에 가깝다.

1968년 토미 스미스(미국)가 처음으로 19초9를 깨고 19초83을 찍은 이래 피에트로 미네아(이탈리아)가 19초72를 찍는데 11년이 걸렸다.

'스타카토 주법'의 대명사 마이클 존슨은 1996년 19초66과 19초32을 잇달아 찍어 무려 17년 만에 기록을 0.4초나 줄였지만 12년 후 볼트는 0.02초를 단축한 뒤 1년 만에 0.11초나 줄이며 200m 기록에서도 '예측의 기준'을 완전히 허물었다.

남자 100m에서 처음으로 9초6대에 진입하고 꼭 1년 만에 다시 9초6의 벽을 허문 볼트였기에 앞으로 어떤 기록이 탄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치 신이 달리는 것처럼 볼트가 마음만 먹으면 신기록이 탄생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단거리에 불고 있는 '볼트 효과'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마디로 볼트가 주도하는 동반 기록 상승 효과를 말한다.

100m에서 은메달에 그쳤으나 게이가 9초71로 미국 신기록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결승에 뛰었던 5명이 9초93 이하로 결승선에 들어오는 등 좋은 기록이 양산됐다.

200m 결승에서도 2위 알론소 에드워드(파나마.19초81)가 지역 신기록을, 나머지 3명은 각각 시즌 개인 최고기록과 개인 최고기록을 나란히 찍는 등 기록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볼트가 이끄는 속도전이 탄환 경쟁에 불을 지피고 있는 셈이다.

한편 볼트는 또 뉴욕(100m 9초72), 베이징(100m 9초69, 200m 19초30), 베를린(100m 9초58, 200m 19초19) 등 북미, 아시아, 유럽 3개 대륙에서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

트랙의 종류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 질주본능에 이제 한창인 나이까지 더해져 앞으로 볼트가 선사할 인간 한계의 도전이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지 세계 60억 인구의 시선이 온통 그에게 쏠려 있다.

(베를린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