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골프선수의 메이저대회 도전은 3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3년 한장상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고문과 김승학 전 KLPGA 회장이 잇따라 마스터스 토너먼트와 브리티시오픈에 출전하며 메이저대회 테이프를 끊은 것.1972년 일본오픈 챔피언 자격으로 '꿈의 구연(球宴)' 마스터스에 출전한 한 고문은 2라운드 합계 152타(77 · 75)로 선전했으나 1타 차로 아쉽게 커트 탈락했다. 김 전 회장 역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브리티시오픈에 나가 1차 커트를 넘었으나 2차 커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두 사람 모두 한국 남자 골프가 세계적 골프 강호로 성장하는 데 디딤돌을 놓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 이후엔 무려 24년 동안 '메이저 공백'이 있었다. 1997년에 이르러서야 김종덕이 브리티시오픈에 모습을 드러냈으나 결과는 커트 탈락이었다. 그 1년 후 마침내 '한국 남자 골프의 간판' 최경주가 브리티시오픈에 처음 도전한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커트 탈락이었다. 강풍과 깊은 러프,항아리 벙커에 대한 '학습'이 효과라면 효과였다. 그 덕분이었는지 최경주는 이듬해인 1999년 브리티시오픈에 두 번째 출전해 공동 49위를 차지,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대회 커트 통과 선수가 됐다.

김성윤은 1999년 US아마추어선수권대회 2위 자격으로 2000년 마스터스에 초청된 적이 있다. 아마추어로는 첫 메이저대회 출전이었으나 3타 차로 탈락했다.

그 이후 한국 선수의 메이저대회 도전은 최경주 일변도였다. 그 사이 허석호는 2006년 브리티시오픈에서 초반 선두권에 나섰다가 공동 11위를 차지하며 '반짝'하기도 했다. 최경주는 2004년 마스터스 때 메이저대회 정상 문턱까지 도달했으나 마지막 남은 벽을 넘지 못하고 단독 3위에 만족해야 했다. 아시아인으로는 역대 마스터스 최고 성적이다.

그 이후 메이저대회와 별다른 인연이 없었던 양용은이 US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한국 및 아시아인의 메이저대회 도전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