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가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본선 무대를 향한 첫 모의고사에서 박주영(AS 모나코)의 시원한 결승 득점포를 앞세워 지독한 `남미 징크스'를 털어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1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미의 강호 파라과이와 친선경기에서 후반 38분에 터진 박주영의 선제 결승골에 힘입어 1-0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한국은 파라과이전 4경기 연속 무승(3무1패)의 부진 고리를 끊고 첫 승리를 거뒀다.

한국이 남미 팀을 상대로 거둔 승리는 1999년 3월28일 잠실에서 치른 친선경기에서 김도훈의 결승골로 브라질을 1-0으로 누른 이후 10년 5개월여 만이다.

하지만 역대 남미팀과 A매치 전적에서는 3승6무14패로 여전히 열세에 놓여 있다.

허정무호는 무패 행진을 24경기(12승12무)로 늘렸다.

허정무 감독은 데뷔전이던 지난해 1월30일 칠레와 평가전에서 0-1 패배를 당했으나 파라과이전 승리로 기분 좋게 월드컵 본선을 향한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한국은 9월5일 호주, 10월10일 세네갈과 평가전을 치르고 11월14일과 18일에는 유럽 예선 1위 팀과 차례로 맞붙는다.

태극전사들은 지난 6월17일 이란과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8차전 이후 50여일 만에 실전을 벌인 탓인지 몸이 다소 무거워 보였지만 본선 무대를 향한 첫 걸음이란 점을 의식한 듯 강한 투지로 파라과이와 맞섰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0위 파라과이는 객관적 전력에선 한국(48위)에 앞서 있지만 안방 이점을 가진 허정무호가 시원한 축포를 쏘아 올리며 상암벌을 찾은 2만2천여 팬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허정무 감독은 `올드 보이' 이동국과 간판 공격수 이근호를 투톱으로 세우고 박지성과 이청용이 빠진 좌우 날개에는 `왼발 달인' 김치우와 염기훈을 배치했다.

중앙 미드필더는 기성용-김정우 조합을 선택하고 포백 수비라인은 왼쪽부터 이영표-이정수-조용형-오범석을 늘어 세웠다.

골키퍼 장갑은 이운재가 꼈다.

지난 2007년 7월 아시안컵 이후 2년 1개월여 만에 대표팀에 돌아온 이동국은 움직임이나 위치 선정이 기대에 못미쳤지만 부상을 털고 가세한 염기훈은 위협적인 슈팅력을 선보였다.

한국은 경기 시작 1분 이동국의 슈팅으로 포문을 연 뒤 김치우의 빠른 왼쪽 측면 돌파와 중원사령관 기성용의 매끄러운 경기 조율로 초반 공격 주도권을 잡았다.

수비수 이영표는 전반 6분 왼쪽 미드필드 부근에서 슈팅 기회가 생기자 오른발 중거리슛을 날렸다.

이어 14분에는 염기훈이 페널티지역 오른쪽 외곽에서 벼락같은 왼발 슈팅을 때렸다.

파라과이 골키퍼 후스토 비야르가 몸을 날려 가까스로 공을 쳐 냈다.

강한 중원 압박에도 세밀한 패스가 이어지지 않아 공격 흐름이 끊기는 게 옥에 티였지만 한국의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파라과이는 전반 24분 기성용이 하프라인 부근에서 패스미스를 하자 이를 놓치지 않고 살바도르 카바냐스가 공을 가로챈 뒤 드리블을 하고 나서 강한 오른발 슈팅을 했지만 거미손 이운재가 안정감 있게 막아냈다.

아찔한 순간을 넘긴 한국은 1분 뒤 상대 수비수 파울로 얻은 오른쪽 프리킥 찬스에서 김치우가 왼발로 감아 올려주자 이동국이 문전으로 달려들며 헤딩슛을 꽂았다.

공의 방향을 조금만 틀었다면 골문을 뚫을 절호의 득점 기회를 놓쳤다.

전반 37분에는 기성용이 아크정면에서 프리킥을 얻어내자 염기훈을 키커로 내세웠다.

염기훈이 수비수 사이로 날카로운 왼발슛을 때렸지만 이번에도 골키퍼 비야르가 눈부신 선방으로 실점 위기를 모면했다.

허정무 감독은 후반 들어 이동국, 오범석, 김치우를 빼고 박주영, 강민수, 조원희를 투입해 공격에 변화를 줬다.

박주영이 이근호와 공격 쌍두마차로 호흡을 맞추는 한편 기성용이 오른쪽 날개를 맡고 염기훈을 왼쪽 측면으로 돌렸다.

박주영은 후반 3분 아크 정면에서 전방이 열리자 총알 같은 오른발슛을 시도했지만 골키퍼 정면이었다.

이후 이렇다 할 득점 찬스를 만들지 못한 채 지루한 공방을 이어가던 한국은 이근호 대신 신예 공격수 조동건, 염기훈 대신 스피드가 좋은 미드필더 이승현을 기용했다.

하지만 파라과이가 체력이 떨어진 태극전사들의 허점을 놓치지 않고 거세게 반격했다.

파라과이는 후반 28분 엔리케 베라가 위협적인 중거리포로 문전을 겨냥했고 1분 후 오른쪽 깊숙이 침투한 오스카 카르조사가 또 한 번 기습적인 슈팅을 날렸다.

치열한 공방전이 무위로 끝나는 듯했지만 프랑스 무대에서 기량을 인정받은 박주영이 해결사로 나섰다.

`조커 특명'을 받은 박주영의 진가가 빛을 발휘한 건 후반 38분.
빠른 공.수 전환으로 공세를 강화한 한국은 기성용이 왼쪽 측면을 돌파한 이승현을 보고 하프라인 부근에서 공을 길게 찔러줬다.

이승현은 공의 속도를 줄인 뒤 왼발로 강한 슈팅을 날렸다.

각이 없었지만 총알 같은 슈팅을 보고 순간 당황한 골키퍼 비야르는 순간 펀칭했다.

공이 그대로 흐르자 박주영이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문전으로 쇄도하며 오른발로 강하게 찼다.

공은 오른쪽 골망을 세차게 흔들었고 박주영은 귀중한 선제골에 환호했다.

박주영의 한 방에 0-1로 뒤진 파라과이는 추격할 힘을 잃었고 한국은 단단한 수비로 파라과이의 공세를 막아내 짜릿한 1점차 승리를 지켜냈다.

`캡틴' 박지성의 공백에도 동료들이 힘을 모아 만들어낸 귀중한 승리였다.

(서울연합뉴스) 이동칠 김남권 이영호 한상용 기자 chil8811@yna.co.krsouth@yna.co.krhorn90@yna.co.krgogo21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