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비슷하게 시작한 1988년생 동료들이 자주 우승하는 것을 봤을 때 정말 부러웠어요. "

6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하일랜드 메도우스GC(파71)에서 끝난 미국 LPGA투어 제이미파오웬스 코닝클래식에서 깜짝 우승한 이은정(21 · 마루망)은 신지애 오지영 김인경 등 동갑내기 '세리 키즈'의 잇단 우승 소식이 자극이 됐다고 털어놨다. '세리키즈'는 박세리의 1998년 US여자오픈 우승 장면에 영향을 받아 골프채를 잡은 한국 낭자군으로,이은정은 동료들이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무명으로 뒤처져 있었다.

그러나 이은정은 이번 대회 마지막날 모건 프레셀(미국)과 연장 첫번째 홀에서 2.5m 거리 버디퍼트를 성공하며 짜릿한 우승을 차지했다. 올 시즌 조건부 시드를 받고 투어에 나섰던 이은정은 이번 우승으로 무명에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이은정은 아마추어 시절뿐 아니라 프로가 된 뒤에도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경기도 포천 동남중 1학년 때 '살을 빼기 위해' 골프를 시작한 이후 제주도지사배 8위 입상이 국내 대회 최고성적이다. 2002년 미국 전지훈련 때 골프 인프라가 좋은 것을 보고 LPGA 무대에 진출하기로 결심한 그는 한영외고 3학년 때인 2005년 전환점을 맞는다. US여자아마추어 퍼블릭링크스챔피언십에서 티파니 처디를 연장 첫홀에서 꺾고 깜짝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 대회는 미국골프협회(USGA)가 주최하는 토너먼트로 2003년 미셸 위,2004년 청야니(대만)가 챔피언이다.

이를 계기로 미군부대에서 식당을 운영해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넉넉지 못한 형편에서도 투어 우승에 '올인'하고 나섰다. 하지만 투어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난해 정식 투어 무대에 데뷔했지만 '톱10'은 한 차례도 들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올 들어 지난 5월 코닝클래식 3라운드 때 다섯 홀(1~5번홀)에서 이글 3개를 잡아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그러나 결과는 공동 65위에 그치며 이내 관심권에서 멀어졌다.

상금랭킹 90위권의 무명선수였던 그가 이번 대회 3라운드에서 무려 10타를 줄이며 단독 1위로 올라서며 주목받았다. 한 라운드 이글 3개와 10언더파에서 보듯 몰아치기에 능해 '조연'에서 '주연'으로 부상할 잠재력은 그 어느 선수 못지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그동안 들쭉날쭉한 플레이에서 벗어나 침착한 경기운영을 펼친 데다 과감하게 퍼트를 한 게 첫 승의 비결로 꼽힌다. '세리 키즈'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평가받겠다고 다짐한 것도 강한 승부욕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다. 그는 우승 직후 "리더보드를 보지 않고 끝까지 한샷 한샷에 집중한 게 우승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퍼트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된 점도 주목된다. 이번 대회에서 라운드당 퍼트 수는 평균 26.25개였는데,이는 그의 시즌 평균치(29.88개)에 비해 3타 이상 적은 것이다. 10언더파를 친 3라운드에서는 퍼트 수가 22개에 그쳤다. 연장전에서도 그의 퍼트는 빛을 발했다. 그린 가장자리에서 친 프레셀의 버디 퍼트가 홀을 살짝 빗나간 반면,망설임없이 과감하게 친 이은정의 퍼트는 홀에 빨려들어 승부를 갈랐다. 그는 "퍼트할 때 처음 본대로 자신있게 친다. 이번 대회를 대비해 퍼트와 아이언샷을 집중적으로 연습해 자신감이 붙은 게 스코어를 줄인 비결"이라고 말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