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김인식 감독은 한숨을 자주 내쉰다.경기 도중에도 선수들의 플레이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자주 짓는다.가끔 더그아웃에서는 넋이 나간 사람 마냥 멍하게 앉아 있다.

김 감독은 올해 천당과 지옥을 경험했다.

지난 3월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야구대표팀이 내로라하는 메이저리거로 구성된 강호들을 잇달아 꺾고 준우승하면서 '국민 감독'으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맡은 한화는 올 시즌 8개 구단 중 꼴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프로야구 흥미를 반감시킨다', '이젠 수건을 던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마저 들려온다.

WBC 대표팀 감독보다 한화 감독이 더 힘들다는 말이 나올 법한 상황이다.

팀 창단 이래 최다 타이인 8연패의 긴 터널에서 헤매고 있는 김 감독의 목소리는 뜻밖에 그리 어둡지 않았다.

28일 프로야구 경기가 없는 월요일. 김 감독은 뇌경색 후유증 정기 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꼴찌 팀 감독의 목소리답지 않게 밝았다.

'요즘 힘드시겠다'는 질문에 "속상하지. 신경질 나지만 어떻게 하겠어"라면서도 "그렇지만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어"라고 답했다.

언제나 걱정 없어 보이고 느릿느릿한 말투의 김 감독에게는 과연 어떤 믿는 구석이 있는 걸까.

◇꼴찌 한화에 무슨 일이 있었나 = 2004년 한화 사령탑으로 부임하고 나서 김 감독은 최악의 시즌을 맞고 있다.

29일 현재 한화는 24승43패3무로 8개 팀 중 꼴찌다.

2004년 이후 팀 최다인 8연패로 몰리고 있다.

시즌 개막 전 8개 구단 가운데 그래도 중간 정도 성적은 거둘 것으로 예상했던 한화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화는 김 감독이 2004년 사령탑에 취임한 이후 5년 동안 한국시리즈 진출 1회를 포함해 2005~2008년 3번 연속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팀이다.

이런 한화가 올 시즌 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투수진 붕괴 때문이다.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 문동환 등 나이 든 투수들이 전성기가 지나서도 잘해줬지만 젊은 선수들이 지금 너무 못 따라간다.

가능성이 있는데도 반도 못 따라가는 지경이야"라며 아쉬워했다.

에이스 류현진을 빼고는 선발 투수가 5회도 제대로 버텨주지 못한다.

선발 투수 중 안영명은 6승4패에 평균자책점 4.60으로 그나마 봐줄 만하지만 유원상은 2승5패에 평균자책점 6.79, 김혁민은 6승7패에 평균자책점 8.33에 달한다.

팀 평균자책점도 5.71로 8개 구단 중 가장 나쁘다.

선발진 부진에 더해 주전 선수 부상도 아쉬운 대목이다.

WBC에서 맹활약했던 한화 4번 타자 김태균이 경기중 당한 뇌진탕 후유증으로 두 달 가량 빠졌다가 최근에야 다시 복귀했다.

또 이범호, 김태완 등 팀의 주축 타자들이 번갈아 부상에 시달리면서 4월 후반 한때 3위까지 올라갔던 팀 순위는 지난달부터 꼴찌로 추락했다.

팀의 주포가 빠지면서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위력도 크게 떨어졌다.

또 주전과 후보 선수들 간의 실력 차이가 크게 나는 것도 팀의 약점으로 꼽힌다.

용병 문제도 김 감독의 발을 잡고 있다.

"타구가 하늘로 뜨면 하늘색과 비슷해 잘 보이지 않는다"며 어이없는 실수를 연발하는 빅터 디아즈도 김 감독에게 큰 실망만 안겼다.

또 마무리투수 브래드 토마스도 부인이 폐렴에 걸리면서 보름 동안 공을 던지지 못하다 겨우 복귀했다.

◇"후반기에는 부활한다" = 그러나 김 감독이나 코칭 스태프, 선수들이 벌써 시즌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은 패배의식에 젖어 있지 않다"며 "오히려 부진에서 벗어나려고 서두르다 보니 실수를 저지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한화는 올해 망친 용병 농사를 시즌 중반 다시 지으려 하고 있다.

디아즈를 대신해 최근 용병 투수 영입에 적극 나선 것이다.

김 감독은 "미국에 용병 투수를 계속 알아보고 있다며 "열흘쯤 지나면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류현진, 안영명에 더해 안정감 있는 용병 선발투수를 확보하고 토마스와 양훈이 마무리로 나선다면 투수진은 어느 정도 믿을만하다는 생각이다.

최근 부상 후유증을 털어내고 김태균이 돌아온 것도 큰 힘이 되고 있다.

김태균은 지난 주말 롯데와 3연전에서 13타수 6안타로 매서운 방망이를 휘둘렀다.

팀의 중심 타선이 위력을 발휘하면 투수들도 부담감을 덜 수 있는 효과가 있다.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부담을 느끼지 말라고 얘기한다.

연패에 부담을 느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WBC 감독 후회하지 않는다" = 한화가 세대교체에 실패하면서 꼴찌로 떨어진 데는 김 감독이 WBC 대표팀을 지휘하느라 감독 자리를 비운 영향도 크다.

김 감독은 올 시즌 개막 후 "코치에게 듣던 것보다 팀 문제가 훨씬 심각한 것 같다"며 투수진 등 문제점을 인정했다.

팀을 정비할 전지훈련기간 WBC 감독으로 차출되면서 정작 자신의 팀은 제대로 추스를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이다.

김 감독은 대표팀 감독직을 몇 번이나 고사한 뒤 "국가가 있어야 야구가 있고 팬이 있어야 팀이나 선수, 코치, 감독도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을 남기며 2006년에 이어 또 한 번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WBC 우승을 향한 '위대한 도전'의 마지막 단계에서 무릎을 꿇었지만 국민은 대표팀 활약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2006년 WBC 4강을 뛰어넘는 쾌거로 국민 감독으로서 명성은 더욱 확고해 졌지만 팀이 성적 부진에 시달리는데 대한 후회는 없을까.

김 감독은 "WBC에서 준우승한 영광에 비할 것이 어디 있느냐.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은 이상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또 WBC 참가 선수들의 잇단 부상 소식에 대해서도 "그런 부상을 당하려고 해서 당했겠느냐. 운이 없어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고 잘라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성진 기자 sungjin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