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듀발(미국 · 사진)만큼 천당과 지옥을 극명하게 오간 골퍼도 많지 않을 것 같다. 한때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제치고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가 882위까지 내려앉는 등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듀발은 '제109회 US오픈'에서 공동 2위에 오르며 화려하게 컴백했다. '잊혀진 천재'의 부활이 폭우로 얼룩진 이번 대회에서 거둔 가장 큰 수확이라는 평가다.

듀발은 1997년 미켈롭챔피언십을 시작으로 2001년 브리티시오픈까지 13승을 거뒀다. 1999년에는 '18홀 최소타수'인 59타를 기록하면서 14주 동안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같은 해 아버지 밥 듀발은 PGA 시니어투어 에메랄드코스트클래식에서,아들은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서 각각 우승해 사상 처음으로 '부자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즈와 양강 체제를 구축하며 미국PGA 투어를 이끌어갈 선수로 꼽히는 등 탄탄대로를 달렸다.

하지만 듀발은 손목과 허리,어깨에 부상이 찾아오면서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2년 '톱10'에 두 차례 든 것을 끝으로 리더보드 상단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2003년 이후 '백약이 무효'인 장기 슬럼프에 빠진 것이다.

그는 지난달 중순 PGA투어 발레로텍사스오픈 1라운드에서 66타를 기록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한 라운드에서 66타를 친 것은 2007년 1월 말 뷰익인비테이셔널 1라운드 이후 27개월 만이자 93라운드 만이다. 하지만 63위로 경기를 마쳐 다시금 팬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듀발은 이번 대회에서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1라운드에 3언더파 67타를 기록한 뒤 2,3라운드를 이븐파로 막고 마지막 라운드에서 1오버파 71타를 쳤다. 무너질 듯하면서도 무너지지 않으며 '잃어버린 6년'의 응어리를 풀었다. 공동 2위에 이름을 올리며 세계랭킹도 882위에서 142위로 끌어올렸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회를 통해 기나긴 슬럼프 탈출의 계기를 마련한 듀발이 앞으로 우즈,필 미켈슨(미국) 등과 치열한 우승 경쟁을 다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듀발은 "2등이 실패라고 말하지 않겠다. 우승은 못했지만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며 "(부진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골프를 즐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