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으로 가는 지역 예선을 성공리에 끝마치고 이제는 본선에서 세계의 높은 벽에 도전하게 됐다.

한국 축구는 세계에서 6번째로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지만 아직 외국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한 번도 예선을 통과해보지 못했다.

따라서 남아공에서는 외국에서 첫 16강 진출이라는 낭보를 전할 수 있을지에 축구 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전 월드컵 본선에서의 성적을 살펴보면 이번 아시아 지역 예선을 가뿐히 통과했다고 해서 마음을 놓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이번처럼 지역 예선을 수월하게 통과했던 때일수록 본선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이다.

당시 한국은 아시아 지역예선을 무패로 통과해 기세가 등등했지만 본선에서는 세 경기를 하는 동안 한 골밖에 넣지 못한 채 3패로 짐을 싸야 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한국은 '도쿄 대첩'으로 불리는 일본 원정 2-1 역전승 등 지역예선을 6승1무1패로 마치며 당시 대선 분위기에 편승해 '차범근 대통령론'과 같은 농담까지 나돌 정도로 잘 나갔다.

그러나 정작 본선에서는 1차전 멕시코에 1-3으로 진 데 이어 2차전 네덜란드에는 0-5로 참패를 당해 차범근 감독은 대회 도중 경질이라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반대로 지역 예선에서 어려움을 겪었을 때는 공교롭게도 본선에서 힘을 내며 온 나라를 축구 열기에 휩싸이게 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밟은 본선 무대였던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한국은 1차 예선 말레이시아와 원정 경기에서 0-1로 덜미를 잡혀 탈락 위기에 내몰렸다가 홈에서 2-0으로 설욕하며 힘겹게 최종 예선에 올랐고 최종 예선에서는 일본을 연파했다.

본선에서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등 강팀들과 한 조가 되는 불운을 겪었지만 한국은 매 경기 득점을 올리며 1무2패로 잘 싸웠다.

또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에도 '도하의 기적'으로 불리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며 가까스로 본선행 티켓을 따냈었다.

최종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북한을 3-0으로 이겼지만 같은 시간 열리고 있던 일본-이라크 경기에서 일본이 이기면 탈락이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2-1로 앞서던 일본은 경기 종료 직전 이라크에 동점골을 내줬고 그 바람에 한국은 일본과 2승2무1패 동률을 이뤄 골득실을 따진 끝에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김호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본선에서 스페인, 볼리비아와 비긴 뒤 우승 후보 독일을 상대로 먼저 세 골을 내줬으나 후반에 두 골을 따라붙는 저력을 보였다.

스페인과 경기에서도 먼저 두 골을 내줘 패색이 짙었으나 후반 39분 홍명보, 종료 직전 서정원이 연속골을 넣어 축구 팬들에게 이긴 것과 진배없는 기쁨을 선사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2002년 한일월드컵도 이런 경우였다.

개최국 자격으로 지역예선을 면제받았지만 당시 거스 히딩크 대표팀 감독은 '오대영 감독'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평가전에서 성적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2001년 5월 컨페더레이션스컵 프랑스와 경기에서 0-5로 진 한국은 같은 해 8월 체코에게도 0-5로 져 본선행 전망을 어둡게 했다.

그러나 태극 전사들은 본선에서 4강에 오르는 드라마를 만들어내며 전국을 한 달간 붉은 물결로 뒤덮이게 했다.

원정 본선 첫 승을 거뒀던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지역 예선은 힘에 겨웠다.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은 2차 예선 몰디브와 경기에서 0-0으로 비겨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으로 사령탑이 바뀌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본프레레 감독 역시 레바논 원정에서 1-1 무승부에 그쳤고 최종예선 사우디아라비아 원정에서는 0-2로 패하는 등 힘든 여정 끝에 독일행을 확정 지었다.

결국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새 선장으로 영입한 끝에 한국은 비록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원정 첫 승을 거두는 등 1승1무1패로 외국에서 열린 본선 사상 최고의 성적을 냈다.

7년 만에 국내 사령탑으로 지휘봉을 잡은 허정무 감독은 든든한 뚝심과 자율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독려하며 끝내 월드컵 3차 예선과 최종예선을 합쳐 예선 14경기 연속 무패(7승7무) 행진으로 남아공으로 가는 희망을 닻을 올렸다.

거칠 것이 없었던 허정무호가 1년 후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의 염원을 이뤄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email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