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대표팀부터 에인트호벤(네덜란드)까지 끈끈한 사제의 정을 맺은 '산소탱크' 박지성(28.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과 '마법 지휘봉' 거스 히딩크 감독(63.첼시)의 사상 첫 그라운드 맞대결이 무산됐다.

맨유는 20일(한국시간) 새벽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08-2009 잉글랜드 FA컵 준결승전에서 에버턴과 연장까지 120분 혈투 끝에 0-0으로 득점 없이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끝내 2-4로 패했다.

박지성은 오른쪽 날개로 선발출전해 후반 18분 날카로운 왼발 슛으로 FA컵 두 경기 연속골을 노렸지만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한 채 후반 21분 폴 스콜스로 교체됐다.

이날 패배로 맨유는 지난해 12월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우승을 시작으로 칼링컵 정상에 오르면서 내심 노렸던 시즌 5관왕 달성 도전에 첫 걸림돌을 만났다.

특히 맨유의 이날 패배로 결승에 선착한 첼시 사령탑 히딩크 감독과 박지성 간 첫 그라운드 사제대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박지성과 히딩크 감독은 맨유와 첼시가 나란히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전을 통과해야만 팬들이 기대하는 사제대결을 펼칠 수 있게 됐다.

맨유로선 젊은 피를 대거 수혈해 1.5군의 전력으로 에버턴을 맞섰던 게 애초부터 무리수였다.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은 웨인 루니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명단에서 빼고 '신예' 페데리코 마케다와 카를로스 테베스를 투톱으로 세웠다.

또 대니 웰벡과 박지성을 측면에 배치하고 좌우 윙백에 파비우-하파엘 형제를 내보내는 파격적인 선발라인으로 에버턴을 상대했다.

그러나 맨유는 대런 깁슨과 안데르손이 호흡을 맞춘 미드필더 라인과 전방 공격진의 호흡이 제대로 맞지 않으면서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처음으로 선발출전한 마케다는 전반 4분 때린 중거리슛이 골대를 벗어났고, 전반 25분 박지성의 찔러주기 패스를 이어받지 못해 골 사냥에 실패했다.

에버턴의 공세에 밀려 공격보다 수비에 치중한 박지성은 후반 18분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수비수 세 명 사이로 왼발슛을 때렸지만 골대 오른쪽을 살짝 빗나가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맨유는 후반 22분 웰벡이 페널티지역 왼쪽을 돌파하는 상황에서 수비수에 밀려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유도하는 듯했지만 주심은 끝내 휘슬을 불지 않았다.

급해진 퍼거슨 감독은 중원 보강을 위해 후반 21분 박지성 대신 스콜스를 투입하면서 반전을 노렸다.

후반 막판 기세를 올린 맨유는 후반 37분 웰벡의 슛이 크로스바를 살짝 넘고, 3분 뒤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때린 마케다의 슛도 골키퍼 가슴에 안겨주면서 연장 승부로 들어갔다.

급해진 맨유는 연장 전반 시작과 함께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를 투입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고, 에버턴의 공세를 힘겹게 막아내면서 끝내 피 말리는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맨유에 끝내 등을 돌렸다.

첫 번째 키커로 나선 에버턴의 팀 케이힐과 맨유의 베르바토프가 나란히 실축하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한 승부차기는 맨유 두 번째 키커인 리오 퍼디낸드의 슛마저 막히면서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에버턴은 2~5번 키커가 깨끗하게 골을 넣으면서 두 골 만회에 그친 맨유를 4-2로 물리치고 14년 만에 FA컵 결승행을 확정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horn9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