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퀸' 김연아는 여자 세계 최고의 스케이터로 올라선 순간 기쁨의 눈물을 더이상 참지 않았다.

이 눈물은 김연아가 지난해 12월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 쇼트프로그램에서 큰 점수차로 동갑내기 라이벌 아사다 마오(19·일본)를 앞섰지만 심적인 부담감 등으로 프리스케이팅에서 잇따라 실수를 범하면서 금메달을 아사다 마오에게 넘겨주는 순간에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기에 온 국민은 함께 울었다.

지긋지긋한 부상으로 결정적인 순간마다 챔피언 자리를 내줘야 했던 김연아는 29일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 센터의 빙판을 지쳤다.

프리스케이팅 결과, 131.59점. 전날 쇼프프로그램에서 얻은 76.12점을 합산하며 207.71점 세계 신기록을 달성했다. 김연아는 생애 첫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하고, 여자 피겨 스케이트의 '꿈의 무대'로 일컬어지는 200점대를 사상 처음으로 밟은 선수가 됐다.

◆천재적인 재능에 지칠줄 모르는 노력파
어릴적부터 김연아를 지켜봤던 많은 사람들은 "빙판 밖에서는 어느 소녀들과 다름없었지만 빙판 위에만 서면 매우 특별한 아이로 변신했다"고 말했다.

어머니인 박미희 씨의 손을 잡고 경기도 과천시 시설관리공단 아이스링크를 처음 찾았을 때의 김연아 나이는 7살. 그저 얼음을 지치며 재미있게 노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어린 김연아는 진지했었고 지기 싫어하는 근성이 보였다고 한다.

김연아가 세계 최고의 자리 오를 것이라는 예상은 10대 초반부터 예견됐다. 악착같은 노력으로 김연아는 10대 초반에 트리플 점프 다섯 가지를 모두 자기의 것으로 완성했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노력이 더 컸다는 게 당시 김연아의 지도자였던 신혜숙 코치의 지적이다.
신 코치는 "김연아가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특별한 재능을 가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타고난 재능을 썩히는 아이들도 적지 않은데 연아는 다행스럽게도 그 길을 비켜나갔다"면서 "재능도 가장 좋고 경기에 출전해서도 1등만 하는 아이가 훈련도 지독하게 해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연아가 아무리 잘했어도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선수가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자신이 흘린 땀에 보상을 받는 것 같다"라고 기뻐했다.

김연아가 '피겨퀸'에 등극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자기 자신에게 엄격했기 때문이다. 한 가지 과제를 달성하고 나면 바로 만족하지 않고 다른 목표를 찾아나서는 근면함이 김연아를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
◆2전3기의 정신으로 세계 정상 등극
그러나 김연아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노력과 높은 점프로 이를 극복하려 했다. 김연아는 부상을 안고도 지난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세계 피겨스케이팅 관계자들은 김연아만이 표현할 수 있는 강렬하고 다이내믹한 표정연기와 손동작에 탄복할 정도였다.

그러나 김연아는 2008년 예테보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동메달에 그치면서 세계 정상 도전을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김연아는 피겨 스타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브라이언 오서를 만나면서 급성장했다. 잦은 부상도 훌훌 털어버리고 건강한 모습으로 되돌아 왔다.

김연아는 2008~2009시즌 그랑프리 시리즈 1차 대회인 'Skate America'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3차 대회인 'Cup of China'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비록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아사다 마오에게 넘겨줬지만 지난 2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4대륙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자신이 세계 최고임을 증명했다.

김연아는 마지막으로 2008~2009시즌을 총정리 하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섰다.

2009 세계선수권 대회 여자 피겨스케이트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선 김연아가 흘린 기쁨의 눈물이 그가 지난 12년간 빙판 위에 수없이 흘렸을 노력의 땀방울임을 알기에 온 국민의 가슴이 더욱 뭉클해지는 것이다.

한경닷컴 박세환 기자 gre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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