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아시아 야구 맹주 자리를 놓고 격전을 치른다.

이웃 나라인 한국과 일본은 야구에 있어서 애증의 역사를 갖고 있다. 객관적인 실력으로는 한국이 분명 일본보다 한 수 아래지만 결과는 달랐다. 특히 일본 전 승리는 '8회 드라마'로 불릴 만큼 짜릿한 승부가 이어졌다.

한국이 7일 저녁 7시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는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아시아 1라운드 일본과의 2차전도 짜릿한 승부가 예상되고 있다.

◆아시아 야구 맹주는 누구?

아시아 야구 맹주는 누구인가? 10년전까지만 해도 일본이라는데 이의를 내놓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일본 프로야구는 한국 야구가 우러러봐야 했던 높은 벽이었다. 1990년대 초중반에 열렸던 한일 슈퍼게임에서 나타난 일본과 한국의 수준 차이는 누가 보더라도 뚜렷했다. 나름대로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출전했지만 일본 프로야구 2진급 선수들에게 조차 밀리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한국 야구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국내 선수들이 미국 메이저리그와 일본 재팬리그에 노크했고 동시에 해외의 수준 높은 야구기술도 국내 프로야구로 빠르게 전달되면서 격차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일본은 더 이상 넘지 못할 벽이 아니었다. 제 1회 WBC 대회에서 한국은 일본에게 당당히 2연승을 거두며 '아시아 야구 맹주'를 자처했던 일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이치로의 '30년 발언'을 무색하게 할 만큼 한국 야구의 위력은 대단했다. 비록 이상한 경기 방식 때문에 4강전에서 일본을 다시 만나 패하기는 했지만 4강까지 올라오는 과정에서 보여준 한국 야구는 세계 정상급으로 손색이 없었다.

이후에도 꾸준히 발전을 거듭한 한국 야구는 드디어 2008년 세계 최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맛봤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9전 전승이라는 기적 같은 결과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진상의 유리함도, 홈어드벤티지도 없는 상황에서 거둔 완벽한 우승이었다.

특히 WBC 대회에서 3패나 당하고도 운좋게 거둔 우승에 취해 기고만장했던 일본야구의 자존심을 두 번이나 무너뜨리면서 국민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했다.

◆'8회 신화 창조는 계속된다'

한국이 일본 야구에 자신감을 갖게 된 계기는 교과서 왜곡문제로 대일 감정이 절정에 달했던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제27회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전이었다. '8회 역전 드라마'의 시초였다.

한국은 대학생이던 선동열의 역투 속에 0-2로 끌려가던 8회말 대타 김정수의 적시 2루타와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로 극적인 동점을 만들고, 계속된 2사 1, 2루 찬스에서 한대화가 3점 홈런을 작렬해 5-2 대역전 드라마를 연출했다. 사상 첫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의 제물도 일본이었고 승부도 8회에 갈렸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3·4위전에서 8회말 이승엽이 일본의 에이스 마쓰자카를 상대로 2타점 2루타를 날리며 3-1의 짜릿한 승리를 거둔 것.

2006년 제1회 WBC에서도 일본에 '8회 징크스'를 안기며 승리를 이어갔다. 일본 야구의 상징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 지역예선 당시 1-2로 끌려가던 한국은 8회초 이승엽이 일본 마무리 이시이 히로토시로부터 역전 결승 2점 홈런을 뽑아내 3-2로 승리, 일본 열도를 충격에 빠뜨렸다.

일본을 꺾고 조 예선 1위로 미국으로 날아간 한국은 다시 한번 본선 8강전에서 일본을 만나 8회초 이종범의 2타전 2루타 한방으로 2-1 승리를 거두면서 '도쿄대첩'이 운이 아닌 실력이었음을 입증했다.

일본은 WBC 4강에서 한국을 6-0으로 꺾고 초대 챔피언에 올랐고, 이후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연장 10회 끝에 10-7 역전승, 2007년 베이징올림픽 최종예선 4-3 승리 등으로 빚을 되갚는 듯 했다.

하지만 한국은 베이징올림픽 무대에서 일본을 연파하며 한국 야구를 다시 보게 했다. 올림픽 예선에서 0-2로 끌려가다 7회 이대호의 동점 2점 홈런, 9회 김현수의 역전 적시타 등으로 5-3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준결승에서 다시 한번 '8회 드라마'를 재현하며 일본을 3·4위전으로 밀어냈다. 2-2 동점에서 8회말 터진 이승엽의 역전 투런홈런으로 경기를 뒤집으며 한국 야구가 일본을 넘어 세계최고 수준에 올랐음을 증명한 것이다.

◆양보할 수 없는 한 판 승부

한국은 2회 WBC대회에서 다시 일본을 만났다. 한국은 프로선수들이 국가대표로 나선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이후 상대전적에서 10승7패로 앞서 있다. 양국 프로야구 주축 선수들간의 맞대결을 펼친 1999년 이후 올림픽과 WBC에선 7승3패로 더욱 뚜렷한 우위를 나타내고 있다. 이제 도전하는 입장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다. 전적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한국 야구 수준이 일본보다 월등히 앞선다고 하기 어렵다. 대표팀 선수 개개인의 기량과 리그 전체 수준을 비교하면 일본이 나은 것이 사실이다.

김인식 한국 대표팀 감독은 "한국 대표팀과 같은 팀을 일본은 네 팀을 만들 수 있다. 그만큼 폭이 넓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한국이 일본에게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대회 당일 집중력에서 앞섰기 때문이다. 실력차가 크지 않은 두 팀간의 승부에서 집중력은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다. 결국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집중력 싸움이 될 것이 틀림없다.

한국의 가장 큰 무기는 자신감이다. 더 이상 일본야구에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한국 야구에 오히려 일본선수들이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타도 한국'을 외치고 있는 일본을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는 한국 야구야 말로 아시아 야구 맹주의 모습이 아닐까.

한편 한국은 이날 오후 7시 도쿄돔에서 일본과의 2차전에 나선다. 한국은 '일본 킬러' 김광현을, 일본은 '원조 괴물투수' 마쓰자카를 각각 선발로 내세울 예정이다.

한경닷컴 박세환 기자 gre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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