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선점을 희석하기 위한 면피성 제스처인가 아니면 한국 축구의 재도약을 위한 승부수인가.

대한축구협회의 갑작스러운 2018년 또는 2022년 월드컵 축구대회 단독 유치 신청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축구협회는 3일 국제축구연맹(FIFA)에 월드컵 유치에 `관심을 표명'(Expression of interest)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FIFA 집행위원회가 내년 12월 2018년 대회와 2022년 대회 개최지를 동시에 결정할 것에 대비한 사전 포석이다.

관심 표명을 하지 않으면 유치 경쟁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만큼 대한축구협회로서는 일단 신청해보자는 심리가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22일 축구협회 대의원총회에서 경선 끝에 제51대 수장에 오른 조중연 회장은 당시 월드컵 도전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언제 월드컵을 개최하겠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도 지금부터 연구하도록 하겠다"며 유보적인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열흘여 만에 월드컵 단독 유치로 입장을 전격 선회한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일본이 먼저 유치전에 뛰어들었고 유치 표명의 마감시한이었던 3일까지 어떤 형태로든 태도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포기'에 따른 축구팬들의 비난을 피하기 위한 임기응변식 대응일 가능성이 크다.

일단 '저질러 놓고 보자'는 심리가 작용했을 수 있다는 시각이 이래서 나왔다.

물론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했던 축구협회로서는 과거의 경험과 이미 구축된 시설 인프라에 대한 자신감이 뒷받침됐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은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은 물론 인천과 수원, 대전, 광주, 전주, 울산, 대구, 부산, 제주 등 전국에 FIFA가 요구하는 수준의 경기장 10곳을 보유하고 있다.

FIFA가 최소 12개 구장에는 2개가 부족함에도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월드컵을 개최할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을 가진 것이다.

또 정몽준 FIFA 부회장이 개최지 결정권이 있는 집행위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든든한 백그라운다.

그럼에도 월드컵 유치 결정 과정은 축구인들의 의견 수렴과 정부와 협조가 부족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상당수 축구인이 2018년 대회 또는 2022년 대회 유치에 나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협회의 준비 부족을 반증한다.

조중연 회장이 당선 직후라도 유치와 관련한 기본적인 입장을 설명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또 정부와 사전 교감도 부족했다.

내년 5월 공식 유치 신청서를 제출하려면 정부가 보증하는 인증서를 내야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 등 유관 부서와 협의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원도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3수에 재도전할 의사를 밝혔고 부산광역시가 2020년 하계올림픽을 유치할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에서 정부로서는 당황스러운 건 당연지사다.

조 회장이 취임사에 강조한 '소통'과 '화합'이 월드컵을 유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독단'과 '밀실행정'이라는 구태를 되풀이했다는 지적도 있다.

2018년 개최지를 `축구 종가' 잉글랜드 등 유럽 국가가 유치하면 2022년 대회는 `대륙 분배' 원칙에 따라 `아시아 쿼터'로 배정될 가능성이 크더라도 충분한 준비 없는 유치전 가세는 다소 경솔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본과 경쟁에서 결코 밀릴 게 없다는 게 축구협회의 판단이지만 국민적인 관심사인 월드컵 유치를 너무 섣불리 결정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 없다.

(서울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chil881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