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고생을 해서 당선 소식을 듣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어요. 유창하지 않은 영어로 한 표를 호소하느라 이상한 이야기까지 들어야 했고요. 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 15시간씩 선수들을 만난 게 믿음과 강한 인상을 준 것 같습니다. "

21일 아시아 선수 출신 가운데 최초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뽑힌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문대성(32ㆍ동아대 교수)은 당선 소식을 듣고 눈물을 글썽였다.

이날 베이징올림픽 선수촌에서 발표된 선수위원 투표 결과 문대성은 유효 투표수 7216표 가운데 3220표를 얻어 총 후보자 29명 중 4명을 뽑는 선거에서 1위에 오르며 이변을 연출했다. 문대성과 함께 표 대결을 벌였으나 상위 4위 안에 들지 못해 탈락한 선수들의 이름을 보면 화려하기 그지없다. 수영의 그랜트 해켓(호주),주최국 중국의 육상 영웅 류샹 등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지만 상위 4위 내에 들지 못해 모두 탈락했다.

"정부나 외곽 지원 없이 혼자만 뛰어야 하는 고독한 과정이었지만 아시아 선수 최초로,그리고 최다 득표로 당선된 것이 믿기지 않아요. 모두들 불가능한 도전이라고 했고 나도 4등만이라도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아테네올림픽 금메달을 땄을 때처럼 전 세계에 한 방 먹인 것 같습니다. "

그가 선거운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달 28일 칭다오에 도착하면서부터다. '순수한(Pure) 마음으로,파워(Powerful) 있고 평화롭게(Peaceful) 이끌어간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요트와 조정 선수들에게 얼굴을 알린 후 같은 달 31일 베이징으로 이동,20여일 동안 쉬지 않고 선수들을 만났다. 흰색 태권도복으로 갈아 입고 선수촌을 종횡무진한 그는 IOC에서 도복 착용을 제지하자 평상복으로 바꿔 입은 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뛰어다녔다. 한국선수단 관계자는 "문대성이 아침 일찍부터 선수촌 식당 앞에 서서 모든 선수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처음엔 다른 후보들도 따라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20여일 넘도록 선거운동을 열심히 한 후보는 문대성뿐"이라고 전했다.

문대성의 당선으로 지난해 9월 박용성 전 IOC 위원의 자진 사퇴 이후 이건희 전 삼성 회장만 IOC를 지켰던 한국은 11개월 만에 2명의 IOC 위원을 보유하게 돼 국제 스포츠무대에서 입지가 강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190㎝의 훤칠한 키와 수려한 외모의 문대성은 구월중-리라공고-동아대를 졸업했으며 1987년 선수 활동을 시작해 1996년 첫 국가대표가 됐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개최국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 니콜라이디스와의 결승전에서 전광석화 같은 왼발 뒤후리기로 KO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4년 말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한 뒤 동아대 감독,태권도학과 교수로 임용돼 후배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문대성은 "국제 스포츠계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아시아 선수들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공정하고 반(反)도핑에 힘쓰며 선수위원회가 영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

IOC선수위원은 임기 8년 ­… 영향력 막강

IOC선수위원은 IOC 선수분과위원회에 소속되지만 모든 권한은 일반 IOC 위원과 같다. 동ㆍ하계 올림픽 개최지 및 올림픽 종목 결정 투표권을 갖는 등 국제 스포츠계에서 막강한 힘을 행사한다. 임기는 8년이다. IOC 선수분과위원은 총 19명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15명만 IOC 위원 자격을 얻는다. 쇼트트랙 선수 출신 전이경이 IOC 선수분과위원으로 활동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