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프로골프에서 3년째 '지존'으로 군림하고 있는 신지애(20.하이마트)가 마침내 세계 1인자로 우뚝 섰다.

신지애는 4일(한국시간) 영국 버크셔의 서닝데일골프장(파72.6천408야드)에서 열린 브리티시여자오 픈 최종 라운드에서 6언더파 66타를 뿜어내 4라운드 합계 18언더파 270타로 정상에 올랐다.

1타차 선두였던 '일본의 소렌스탐' 후도 유리(일본.274타)를 4타차 공동3위로 밀어낸 짜릿한 역전 우승이며 2위 청야니(대만.273타)를 3타차로 따돌린 완승이었다.

우승 상금은 31만4천달러.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 첫 우승을 메이저대회에서 따낸 신지애는 이번 우승으로 세계여자프로골프의 주력 부대로 자리 잡은 '박세리 키드' 세대의 에이스임을 만방에 과시했다.

신지애 역시 열살 꼬마이던 1998년 박세리(31)가 LPGA 투어 메이저대회를 잇따라 제패하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되겠다'는 꿈을 키웠던 '박세리 키드'의 일원.
US여자오픈 챔피언 박인비(20.SK텔레콤)에 이어 한국 선수의 메이저대회 2연승을 엮어낸 신지애는 박세리, 박지은(29.나이키골프),장정(28.기업은행), 김주연(27), 박인비에 이어 한국인 여섯번째 메이저대회 우승자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 선수가 메이저대회에서 올린 승수는 꼭 10승이 됐고 브리티시여자오픈 우승은 박세리, 장정에 이어 세번째이다.

이번 대회가 열린 서닝데일골프장은 7년 전인 2001년 박세리가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브리티시여자오픈 정상에 섰던 장소라는 점도 의미가 남달랐다.

특히 신지애는 웬만한 실력자라면 LPGA 투어로 몰려가는 추세를 외면하고 3년째 국내 무대를 지키면서도 세계랭킹 10위 이내에 진입했고 메이저대회 우승컵까지 거머쥐어 한국여자골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한국에서 상금왕을 3연패한 뒤 2009년 시즌부터 LPGA투어에서 뛰겠다"면서 "그러나 퀄리파잉스쿨을 거치지는 않겠다"고 공언했던 신지애는 장담한대로 내년 LPGA 투어 카드를 손에 넣어 '세계 지존'을 향한 첫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뎠다.

신지애는 LPGA 투어 비회원으로서 투어 대회를 우승한 13번째 선수이지만 비회원의 메이저대회 우승은 1987년 US여자오픈 우승자 로라 데이비스(잉글랜드)에 이어 두번째이다.

신지애는 브리티시여자오픈 10년 출전권에 내년 LPGA 투어카드, 그리고 연말에 32명이 우승 상금 100만달러를 걸고 치르는 ADT챔피언십 출전 자격을 보너스로 받는다.

최종 라운드는 '미니 한일전' 양상으로 전개됐다.

1타차 1, 2위로 4라운드 맞대결에 나선 후도와 신지애는 1번홀(파5)에서는 나란히 버디를 잡았지만 이글도 쏟아지는 2번홀(파5)에서 파에 그치면서 지은희(21.휠라코리아)와 미야자토 아이(일본)가 1타차로 따라 붙는 빌미를 줬다.

그러나 차분하면서도 여유넘치는 경기 운영으로 후도와 기싸움에서 앞선 신지애는 찬스를 기다렸고 찬스가 오자 놓치지 않았다.

일본에서 44승이나 올렸지만 이제 내리막길을 걷는 32세의 후도는 깨지기 쉬운 그릇을 옮기는 듯 조심스러운 표정이 역력했으나 역전승을 취미로 삼을만큼 뒷심이 강한 신지애는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5번홀(파4) 6m 버디를 성공시키며 공동 선두로 뛰어 오른 신지애는 9번홀(파4)에서 1m 버디를 챙기며 승기를 잡았다.

후도는 9번홀에서 벙커에서 벙커를 전전하다 1타를 잃어 2타차로 밀려났다.

10번홀(파5)에서 두번만에 그린에 볼을 올린 뒤 가볍게 버디를 보탠 신지애는 13번홀(파3)에서 사실상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길이가 182야드에 이르러 버디보다는 파세이브에 주력해야 하는 까다로운 13번홀에서 신지애는 티샷이 길게 날아가 핀에서 13m나 떨어진 곳에 볼을 올렸다.

내리막이라 파를 지키기도 쉽지 않아보였지만 신지애가 퍼터로 굴린 볼은 홀 쪽으로 다가오더니 왼쪽 언저리를 타고 그대로 사라졌다.

신지애는 순간 오른 주먹을 불끈 쥐며 우승을 확신한 표정을 지었다.

2m 버디 기회를 만들었던 후도는 기가 죽은 듯 버디 퍼트를 실패했고 신지애는 3타차라는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이어진 15번홀(파5)에서 신지애는 5m 이글 퍼트가 빗나갔지만 손쉽게 1타를 더 줄여 대회 최소타 우승 기록(19언더파 269타)에 1타차로 다가섰다.

16번(파4), 17번홀(파4)을 모두 파로 막아낸 신지애는 18번홀(파4)에서 두번째샷을 벙커에 빠트렸지만 파를 지켜내 최종 라운드 스코어에 보기없이 버디 5개를 적어넣는 완벽한 경기로 마무리했다.

2004년 카렌 스터플스(잉글랜드)가 세운 대회 최소타 기록에 1타가 모자란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신지애는 "메이저대회 우승을 꿈꿔왔는데 마침내 이뤄냈다"면서 "전날 밤에 잠을 거의 자지 못했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았던 것이 승인"이라고 영어로 우승 소감을 말했다.

후도는 16번홀(파4) 보기로 4타차까지 벌어지며 우승 경쟁에서 완전히 탈락했고 미야자토는 18번홀(파4)에서 벙커샷 실수로 더블보기를 적어내며 자멸했다.

청야니와 준우승 경쟁을 벌인 지은희는 12번홀(파4) 보기 이후 5개홀을 파에 그친 것이 뼈아팠다.

18번홀(파4)을 버디로 마무리지으며 이날 5타를 줄인 지은희는 공동3위(14언더파 274타)에 올라 작년 공동5위에 이어 브리티시여자오픈과 각별한 인연을 뽐냈다.

상금 12만2천838달러를 보탠 지은희는 시즌 상금 104만5천366달러를 받아 100만달러 고지를 돌파했다.

시즌 두번째 메이저대회 맥도널드LPGA챔피언십 우승자 청야니는 후반에만 4타를 줄이는 등 6언더파 66타를 때려 준우승 싸움에서 승리했다.

청야니는 공동21위(7언더파 281타)에 머문 최나연(21.SK텔레콤)에 뒤지고 있던 신인왕 포인트 레이스에서 1위를 되찾았다.

한희원(30.휠라코리아)과 김인경(20.하나금융)이 공동9위(10언더파 278타)를 차지, 10위 이내에 한국 선수 4명이 포진했다.

작년 우승자 로레나 오초아(멕시코)는 3언더파 69타를 친 끝에 공동7위(11언더파 277타)에 그쳤고 마지막 브리티시여자오픈에 출전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은 4타를 줄였지만 공동24위(6언더파 282타)에 머물렀다.

오초아는 "난 최선을 다했다.

위대한 승리를 거둔 신지애가 경탄스럽다"며 "내 실력을 더 가다듬어서 (아시아 선수들을 상대로) 다음 시즌을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18번홀에서 버디를 잡아내 나름대로 유종의 미를 거둔 소렌스탐은 "멋진 마무리라고 생각한다"면서 "이곳을 많이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1, 2라운드에서 선두권을 달리며 노익장을 뽐냈지만 체력 저하를 이겨내지 못해 공동14위(9언더파 279타)에 그친 줄리 잉스터(미국)는 "이제 아시아 선수들의 약진을 눈여겨 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권 훈 기자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