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프로로 전향해 2008년 8월 브리티시여자오픈 제패까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의 지존 신지애(20.하이마트)가 한국 무대를 뛰어 넘어 세계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3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만 20세 아직도 소녀의 티를 벗지 못한 신지애가 짧은 기간에 한국여자골프 역사에 남긴 발자취는 너무나 뚜렷하다.

`지존', `역전의 명수' 등 그동안 수많은 우승을 차지하며 절대 강자의 자리에 올라선 신지애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신지애에게는 우승의 기쁨만이 함께 한 것은 아니었다.

스무살 신지애는 어떤 사람도 감당하기 힘든 아픔을 견디며 묵묵히 정상을 향해 나갔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목사인 아버지 신재섭(48)씨가 일하던 전남 영광에서 처음 골프채를 잡았던 신지애는 같은 또래 선수들처럼 각종 아마추어 대회를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3년 11월 신지애는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맞게 된다.

어머니 나송숙씨가 두 동생과 함께 자동차를 몰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어머니는 4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게 된다.

교통사고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두 동생은 심하게 다쳐 1년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신지애는 이 기간 병실 한 귀퉁이에 간이 침대를 마련해 놓고 동생 병간호를 하면서 생활해야 했다.

동생들이 퇴원한 뒤에도 별로 나아질 것은 없었다.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가정이 아니었기에 신지애는 단칸 셋방에 아버지와 두 동생 등 네명이 함께 살아야 했다.

골프 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던 신지애는 초청 선수 자격으로 출전한 2005년 11월 KLPGA 투어 SK엔크린인비테이셔널에서 쟁쟁한 선배를 제치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미 국가대표로 선발돼 2006 도하아시안게임 출전을 눈앞에 뒀던 신지애는 고민했다.

아버지가 동생들 병간호와 자신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사실상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신지애가 `소녀 가장'이 돼야 했다.

결국 신지애는 아마추어 최고의 명예인 국가대표를 포기하고 2005년 11월 프로 무대에 뛰어 들었다.

유난히도 유망주가 많았던 1988년 생 중에도 프로에 진출한 선수가 많았지만 생존 경쟁이 치열한 프로무대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은 일. 하지만 신지애는 달랐다.

본격적으로 프로 투어에 뛰어든 2006년 신지애는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한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한 것을 포함해 세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상금왕과 신인왕에 올랐고 이것은 `신지애 시대'를 열어 젖히는 신호탄에 불과했다.

2007년 신지애는 한국여자골프의 새로운 역사를 차례로 써내려갔다.

시즌 9차례 우승으로 종전 시즌 최다승 기록(5승)을 갈아치운 신지애는 2006 시즌을 포함한 두 시즌 동안 33개 대회 만에 통산 상금 10억4천800만원을 벌어들여 정일미가 99개 대회에서 쌓았던 종전 최다 상금 기록 8억8천683만을 훌쩍 뛰어 넘었다.

상금왕과 다승왕에다 최저타수상, 최우수선수상 등 상이라는 상은 모두 휩쓴 신지애의 다음 목표는 당연히 세계 무대 제패.

하지만 신지애는 성급하게 세계 무대에 뛰어 들지 않았다.

2008시즌으로 접어들면서 국내 대회와 해외 대회를 병행한다는 계획을 세운 신지애는 새해 벽두부터 호주와 일본 등을 오가는 강행군을 했다.

여기에는 굳이 LPGA 투어 퀄리파잉스쿨을 통하지 않더라도 검증된 실력으로 초청장을 받은 굵직한 대회에 출전, 성적을 쌓으면 해외 진출은 자동으로 된다는 자신감도 숨어 있었다.

주위에서는 걱정스런 목소리도 나왔다.

빡빡한 경기 일정을 어떻게 소화하며 각기 다른 코스, 특히 그린 위에서 적응이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
하지만 신지애는 강철같은 체력으로 이를 극복해 나갔고 마침내 브리티시여자오픈을 제패하면서 세계무대 정복의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채웠다.

신지애의 최대 강점은 평균 비거리 270야드를 넘나드는 장타력으로 세계 정상급 선수들에게도 뒤지지 않고 홀에 바짝 붙이는 정교한 아이언샷은 어떤 상황에서도 버디 기회를 만들어 낸다.

여기다 국내 무대에서 이미 입증했듯이 최종 라운드에서 타수가 벌어졌더라도 기어코 역전 우승을 이끌어 내는 정신력까지 갖췄다.

LPGA 투어 선수 중에서는 명예의 전당 회원 줄리 잉스터(미국)를 가장 존경한다는 신지애는 대표선수 시절 전지훈련 때 잉스터의 경기를 보기 위해 대회장을 찾기도 했다고.
잉스터는 지난 5월 한국여자오픈 때 한국을 찾아 신지애가 폭풍우 속에서 연장전 우승을 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끝까지 자리를 지켜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잉스터가 보는 앞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려 우정에 보답한 신지애는 이제 우상을 넘어서 세계 랭킹 1위를 향한 진군을 시작했다.

`박세리-김미현'이 주축이 됐던 한국여자프로골프 황금 세대를 이어 제2의 전성기를 열어 주기를 바라는 팬들의 기대가 신지애에게 모아지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최태용 기자 c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