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나달(22.스페인)이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27.스위스)를 꺾고 윔블던테니스대회 남자단식 정상에 우뚝 섰다.

나달은 7일(한국시간) 영국 윔블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남자단식 결승에서 페더러를 3-2(6-4 6-4 6<5>-7 6<8>-7 9-7)로 제압하고 이 대회에서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지난 달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했던 나달은 이로써 1980년 비욘 보리(스웨덴) 이후 처음으로 한 해에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을 휩쓸었다.

올해 메이저대회인 프랑스오픈을 비롯해 5개 대회에서 우승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던 나달이었지만 페더러를 잔디 코트에서 꺾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2003년 이 대회부터 지난 해까지 5년 연속 챔피언 자리를 지켰던 페더러는 잔디 코트에서 65연승, 윔블던에서 40연승을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랭킹 1위로 실력 자체도 최강인데다 특히 잔디코트와 윔블던에서는 '스페셜리스트'라 불릴 정도로 탁월한 경기력을 뽐내는 페더러를 상대로 나달은 최근 2년 연속 이 대회 결승에서 무릎을 꿇었다.

출발부터 운이 따랐다.

1세트 게임스코어 1-1에서 맞선 페더러의 서브 게임이었다.

30-40으로 뒤진 페더러가 나달이 넘긴 공을 받아내기 위해 라켓을 휘둘렀지만 허공만 갈랐다.

좀처럼 보기 힘든 '헛스윙'이 나온 것이다.

이날 중계를 맡은 스포츠 전문채널 MBC-ESPN에서 해설을 한 이형택은 "잔디 상태가 고르지 않아 불규칙 바운드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지만 어쨌거나 운은 나달에 따른 셈이 됐다.

이 때 따낸 페더러의 서브 게임을 끝까지 잘 지켜 6-4로 첫 세트를 이긴 나달은 2세트 초반 페더러의 거센 반격에 잠시 주춤했다.

페더러는 초반 나달의 서브 게임을 따내며 게임스코어 3-0으로 달아나 이번 대회 처음으로 세트를 뺏긴 분풀이를 하려는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 2년 연속 이 대회 결승에서 페더러에 졌던 나달의 복수심이 더 강했다.

1-4로 뒤지던 나달은 이후 내리 5게임을 따내며 2세트마저 접수했다.

3세트 게임스코어 5-4로 페더러가 앞선 상황에서 비가 내려 경기가 중단된 것이 페더러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듯 했다.

약 1시간 정도 쉬고 나온 페더러는 경기를 타이브레이크까지 끌고 간 끝에 3세트를 따내며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4세트는 더 드라마틱 했다.

역시 타이브레이크까지 간 페더러는 2-5로 뒤져 패색이 짙었으나 극적으로 내리 4포인트를 따내며 기사 회생, 승부를 마지막 세트로 돌렸다.

두 차례나 매치 포인트를 내주고도 기어이 살아남은 페더러는 타이브레이크 10-8로 세트를 끝냈다.

5세트에서도 비가 내리며 잠시 경기가 중단됐는데 이번엔 결국 나달이 웃었다.

게임스코어 4-4, 5-5, 6-6부터 계속 브레이크포인트를 잡고도 기회를 살리지 못해 듀스를 이어가던 나달은 7-7로 맞선 페더러의 서브 게임을 따내며 승기를 잡았다.

현지 시간 밤 9시가 넘어 자칫하면 일몰로 경기 진행이 더 어려울 수 있는 상황에서 나온 브레이크였다.

특히 브레이크포인트를 내주고도 이날 무려 서브에이스 25개를 터뜨리며 절묘하게 고비를 빠져나오던 페더러의 기세가 한 풀 꺾이는 순간이었다.

나달은 이어진 자신의 서브 게임에서 역시 듀스까지 끌려가며 고전했지만 마지막 페더러의 리턴이 네트에 맞고 떨어지자 두 팔을 번쩍 치켜들며 코트 위에 누웠다.

페더러는 이겼더라면 1880년대 윌리엄 렌셔(영국) 이후 최초의 윔블던 남자단식 6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쌓을 뻔 했지만 첫 두 세트를 내준 것이 부담이 됐다.

나달은 "지금 느낌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사실 예전에는 윔블던에서 뛰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렇게 우승까지 하리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고 기뻐했다.

패자에 대한 예우도 잊지 않았다.

"페더러는 여전히 넘버 원이다.

그는 윔블던을 다섯 번이나 제패했고 나는 이제 겨우 한 번"이라고 말했다.

페더러는 "정말 모든 것을 다 시도해봤다.

라파(나달의 애칭)는 챔피언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최고의 대회에서 만난 최악의 상대였다"고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단 "내가 이기지 못해 유감이다.

내년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내년 윔블던 정상 탈환을 예고했다.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email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