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에게 이름도 낯선 세계랭킹 29위 트레버 이멜만(남아공)이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를 제치고 신(神)이 점지한다는 마스터스골프 챔피언에 올랐다.

이멜만은 14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오거스타내셔널골프장(파72.7천445야드)에서 열린 최종 라운드에서 3타를 잃었지만 4라운드 합계 8언더파 280타로 우승했다.

우즈는 4라운드를 이븐파 72타로 마쳐 이멜만에 3타 뒤진 5언더파 283타로 준우승에 그쳐 연간 4개 메이저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그랜드슬램의 꿈을 내년으로 미뤘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우승은 2006년 웨스턴오픈 한 번 뿐이던 이멜만은 투어 두번째 우승을 메이저대회에서 이뤄내는 파란을 연출하며 벼락 스타로 등장했다.

특히 이멜만은 이번 대회에서 최다 출장기록(51회)을 세운 고국 남아공의 대선배 개리 플레이어와 각별한 인연으로 화제가 됐다.

세차례 마스터스 챔피언이었던 72세 플레이어는 이멜만이 미국에 진출하도록 이끈 데 이어 이번 대회 때도 연습 라운드를 함께 하는가 하면 대회 내내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멜만은 플레이어가 마지막으로 마스터스 정상에 올랐던 1978년 이후 꼭 30년 만에 남아공 골프의 마스터스 제패의 꿈을 다시 이뤄 은혜에 보답했다.

넉달 전 횡격막 종양 제거수술을 받고 투어에 복귀하느라 이멜만은 또 올해 8개 대회에서 네차차례나 컷오프되고 한 번도 '톱 10'에 들지 못했지만 최고 대회에서 정상에 오르는 극적인 반전을 누렸다.

우승 상금 135만 달러를 받아 상금랭킹이 129위에서 9위로 고속 엘리베이터를 탔고 세계랭킹도 15위로 올라선 이멜만에게 무엇보다 '메이저대회 챔피언'의 영예가 평생 동안 따라 붙는다는 것을 감격스러워했다.

이멜만은 "흔들리지 말자고 나 자신에게 당부하면서 경기를 치렀다.

샷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면서 "내가 해낸 일이 믿겨지지 않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멜만의 우승으로 현역 남아공 선수 가운데 메이저 챔피언은 어니 엘스, 레티프 구센에 이어 세명으로 늘어났다.

브랜트 스니데커(미국)와 2타차, 스티브 플레시(미국)에 3타차, 폴 케이시(잉글랜드)에 4타, 그리고 가장 껄끄러운 우즈에 5타 앞선 단독 선두로 최종 라운드에 나선 이멜만은 추격자들이 제풀에 주저 앉은 덕에 비교적 편안한 라운드를 즐길 수 있었다.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메이저대회 제패는 커녕 우승 기회조차 잡은 적이 없었던 스니데커, 플레시, 케이시는 속절없이 타수를 까먹으며 경쟁에서 떨어져 나갔다.

메이저대회 우승 경험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1999년 아마추어 시절 마스터스에 출전했고 2005년에는 홀인원의 행운과 함께 공동 5위에 올라봤던 이멜만은 흔들리지 않고 타수를 지켜나갔다.

1번홀(파4) 보기를 5번홀(파4) 버디로 만회한 이멜만은 8번홀(파5)에서 1타를 잃었지만 이미 2위 그룹과 타수차 5타나 벌어져 큰 압박감은 없었다.

챔피언조에서 함께 경기를 치른 스니데커는 9번홀까지 3타를 까먹었고 플레시는 12번홀(파3)에서 티샷을 물에 집어넣으면서 2타를 잃어버린 뒤 네홀 연속 보기로 무너졌다.

케이시도 4번홀(파3) 더블보기에 이어 4개 홀 연속 보기를 적어내며 리더보드 상단에서 사라졌다.

이멜만이 가장 신경이 쓰였던 우즈도 답답했다.

사흘 내내 식어 있던 우즈의 퍼팅 감각은 끝내 달아오르지 않았다.

9번홀까지 버디 1개와 보기 1개로 제자리 걸음을 걷던 우즈는 11번홀(파4)에서 20m가 넘는 장거리 버디 퍼트가 들어가는 행운을 맛봤지만 정작 꼭 넣어야 할 거리의 퍼트는 홀을 외면했다.

우즈의 추격은 반드시 버디를 챙겨야 할 13번홀(파5)에서 파에 그치며 사실상 막을 내렸다.

티샷을 숲으로 날렸지만 잘 꺼낸 뒤 세번째 샷을 홀 1.5m에 붙였지만 버디 퍼트는 홀 왼쪽으로 비켜났다.

그가 13번홀에서 버디에 실패한 순간 이멜만은 11번홀(파4)에서 6m짜리 파퍼트를 성공시켜 대조를 이뤘다.

실망한 우즈는 14번홀(파4)에서 버디 퍼트를 턱없이 짧게 쳐 3m 거리의 파퍼트를 남기는 실수를 저질렀고 파퍼트가 빗나가면서 이멜만을 따라 잡을 동력을 잃었다.

16번홀(파3)에서도 2m 버디 기회를 잡아 마지막 반전을 시도했지만 오거스타의 그린을 끝내 우즈를 외면했다.

우즈는 18번홀(파4)에서 4.5m 버디 퍼트가 들어가자 퍼터를 매만지며 '경기가 다 끝나니까 퍼터가 말을 듣는다'는 표정으로 허탈해 했다.

우즈는 "퍼팅이 내내 안됐다.

좋은 날도 있고 안 좋은 날도 있는 법인데 이번 대회는 내게 안 좋은 경우였다"고 말했다.

그가 경기를 끝냈을 때 5타 앞선 채 15번홀을 마친 이멜만이 16번홀(파3)에서 티샷을 물에 빠트리며 2타를 잃자 일순간 분위기가 술렁였다.

더구나 이멜만이 17번홀(파4)에서 두번째 샷을 벙커에 빠트리자 갤러리 사이에 '혹시나'하는 표정이 번졌다.

그러나 이멜만은 파를 지켜내 내심 연장전을 고대했던 '타이거 팬'들을 실망시켰고 18번홀 파퍼트를 마치면서 두 손을 번쩍 치켜 들었다.

우즈와 동반 플레이를 펼치면서 같은 이븐파 72타를 친 스튜어트 싱크(미국)가 5오버파 77타로 무너진 스니데커와 함께 공동 3위(4언더파 284타)에 올랐다.

역시 이븐파 72타를 친 필 미켈슨(미국)과 파드리그 해링턴(아일랜드)은 6오버파 78타로 망가진 플레시와 함께 공동 5위(2언더파 286타)가 됐고 7타를 잃어버린 케이시는 공동 11위(이븐파 288타)로 밀려났다.

'탱크' 최경주(38.나이키골프)는 1오버파 73타를 쳐 최종 합계 10오버파 298타로 41위에 그쳤다.

(서울연합뉴스) 권 훈 기자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