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 육상이 화려한 비상의 날개를 달게 됐다.

27일 오후(이하 한국시간) 케냐 몸바사 화이트샌즈 호텔에서 열린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집행이사회에서 대구가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이하 세계육상) 개최지로 결정됨으로써 한국 육상이 제2의 도약기를 맞게 된 셈이다.

이는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에서 히딩크호가 만들어낸 4강 신화를 기점으로 한국 축구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성장의 과정을 겪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육상은 사실 마라톤을 빼면 세계에 내놓을만한 이렇다할 성적표가 없는 상태다.

1936년 고 손기정 선생의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제패와 1992년 황영조의 바르셀로나올림픽 우승, 이봉주의 2001년 보스턴마라톤 제패 등이 마라톤의 맥을 면면히 이어왔지만 정작 육상의 본령인 '트랙.필드'에서는 아시아에서 조차 약체국의 수모를 면치 못했다.

1948년 런던올림픽부터 올림픽 무대에 계속 도전해왔지만 메달은 커녕 8명이 겨루는 결선에 진출한 것도 손에 꼽을 정도다.

한국 육상의 저조한 성적표는 세계육상 무대에서는 더욱 처참했다.

지난 10차례 세계육상에서 한국이 거둔 최고 성적표는 남자 마라톤 4위가 고작이었다.

가장 최근 대회인 2005년 헬싱키 세계육상에서도 한국은 경보에서만 10위권의 성적을 냈을 뿐 트랙과 필드에서는 전원이 예선 탈락했고 믿었던 마라톤조차 최하위권에 머물고 말았다.

또 작년 연말 도하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 하나를 수확하는데 그쳐 28년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한국 육상이 침체에 빠진 것은 육상이 전체 스포츠의 어머니 격인 '1번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헝그리 스포츠라는 인식 때문에 유소년 꿈나무들의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또 지도자와 육상연맹이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선수 발굴 작업을 해내지 못한 책임도 적지않다.

한국 육상은 그러나 세계육상 유치로 중.장기 육상진흥 강구책을 가동할 명분과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은 IAAF에 제시할 육상 진흥책으로 각계 인사들을 망라하는 육상진흥위원회(가칭)와 학교체육(육상)발전지원법 제정, 전천후 육상경기장 건립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대구 세계육상 유치위원회는 IAAF 유스 프로그램에 별도의 기부금 제공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동시에 한국 육상 발전을 위해 향후 4년 간 300억원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도록 지원 체제를 가동할 방침이다.

따라서 한국 육상은 28년 묵은 100m 한국기록 돌파와 임박한 오는 8월 오사카 세계육상에서 트랙.필드 메달권 진입이라는 당면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이날 화이트샌즈 바라자컨퍼런스룸에 열린 최종 프리젠테이션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여자 100m 국가대표 상비군 강다슬(15.덕계중), 제2의 김덕현으로 불리는 남자 멀리뛰기 유망주 김성호(16.전남체고)는 한국 육상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꿈나무다.

이들이 대구 세계육상에서 화려한 질주와 비상을 펼쳐보일 수 있도록 한국 육상의 발전 청사진을 현실로 만들어나가는 게 대구와 한국 육상계의 남은 과제다.

(몸바사<케냐>연합뉴스) 옥 철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