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들, 국내 프로야구는 또 뒷전

'이승엽 시청률'이 한국프로야구를 통째로 집어 삼킬 태세다.

스포츠전문 케이블 위성채널 MBC ESPN이 일본프로야구 이승엽(31.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원정경기 중계권을 따내 30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릴 시즌 개막전부터 위성 생중계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청자의 '보편적 접근권'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MBC ESPN 관계자는 21일 연합뉴스와 전화에서 "(원정경기 중계가) 구체적으로 몇 게임이 될지는 아직 밝힐 수 없다.

지금도 일본 여러 구단과 중계권을 놓고 협상 중"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미 지난해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를 휩쓴 우량 콘텐츠라는 점에서 이승엽의 원정경기를 더 많이 따낼 것이라는 예상은 불 보듯 뻔하다.

지난해 이승엽 중계로 쏠쏠한 재미를 본 SBS스포츠가 이승엽의 홈 경기 72게임을 독점 실황중계하기로 밝히면서 야구팬은 사실상 이승엽이 출전하는 요미우리의 144게임 전 경기를 안방에서 지켜볼 수 있게 됐다.

문제는 국내 프로야구가 또 뒷전으로 밀렸다는 사실이다.

공중파 3사가 프라임시간대 편성을 이유로 정규시즌 중계에서 손을 뗀 상태에서 케이블 채널마저 외면해 시청자들의 프로야구를 시청할 권리는 그만큼 사라졌다.

이에 대해 MBC ESPN 편성팀 관계자는 "일본프로야구가 우리보다 1주 먼저 시작하고 한국에서는 게임이 없는 월요일에도 열린다.

주말에는 오후 2-3시에 열리는 게임도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국내 프로야구와 겹치는 게임은 25경기에 불과하다.

겹치는 경기도 생중계만 못해줄 뿐 이승엽의 경기가 끝난 후 전 경기를 보여줄 계획이어서 전체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적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송진우(한화)의 200승 달성 경기가 생중계되지 못해 팬의 큰 원성을 산 것을 염두에 둔 듯 "한국야구에서 기념비적인 기록 수립이 예상되는 경기는 이승엽 게임이 있더라도 무조건 생중계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청자가 보고 싶은 경기를 생중계로 시청하지 못한다는 더 큰 문제에 관해 이 관계자는 침묵했다.

4개 구장에서 열리는 게임 중 지난해까지 하루 최대 3게임을 동시에 볼 수 있었으나 올해부터는 당장 하루 최대 두 경기 또는 전혀 없는 상황(축구 중계와 겹치는 경우)으로 줄게 됐음에도 불구, 시청률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보편적 접근권'을 무시한 처사로 밖에 풀이할 수 없다.

이는 공공성과 공익성을 최대 원칙으로 삼아야 할 지상파방송과 그 계열사가 취할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더군다나 또 다른 케이블 채널인 Xports에 프로야구 중계권을 재판매하자는 논의에 대해 지상파 3사는 Xports의 프로농구 및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중계 독점 사례를 거론하며 판매불가의 담합 태도까지 취하고 있어 야구 부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인기 도약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한국 야구가 시청률을 최고 가치로 삼은 케이블 채널의 '이승엽 태풍' 탓에 좌초되지 않을까 시작부터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