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첫 번째 희생양은 한국 쇼트트랙의 대들보 안현수(22.한국체대)였다.

안현수는 30일 창춘 우후안체육관에서 펼쳐진 제6회 창춘 동계아시안게임 남자 쇼트트랙 500m 계주에서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억울한 심판 판정에 실격처리돼 분루를 삼켜야만 했다.

안현수는 이날 송경택(고양시청)과 함께 중국의 리예 및 후저와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출발신호와 함께 리예와 후저의 뒤를 이어 3위로 레이스를 펼친 안현수는 추월의 기회를 엿보다가 마지막 바퀴에서 단숨에 2위로 올라섰다.

이어 마지막 직선주로에서 승부수를 건 안현수는 선두로 달리던 리예를 인코스로 추월하면서 1위로 올라섰다.

인코스를 허용한 리예는 곡선주로에서 순간 비틀거리며 중심을 잃은 채 넘어졌고, 안현수는 가볍게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이 때 왕시안 심판장은 이와지마 나오미 부심과 편해강 부심을 불러 모아 안현수의 추월 상황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안현수와 송경택은 대형 태극기를 들고 체육관 지붕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를 통해 반복되는 경기 장면을 지켜봤고, 중국의 후저와 리예 역시 대형 오성홍기를 들고 링크를 돌았다.

2-3분여의 협의 속에서도 심판끼리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왕시안 심판장은 안현수의 추월장면을 지켜본 링크 밖의 사이드 부심에게 문의를 했다.

중국인 부심은 곧장 왕시안 심판장에게 안현수의 밀치기 반칙을 지적했고, 왕시안 심판장은 의견을 받아들여 안현수에게 실격판정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중국인 심판장이 중국인 부심에게 의견을 물어보는 어색한 장면이 연출되면서 홈 텃세의 냄새가 강하게 풍길 수 밖에 없었다.

한국 선수단은 당초 쇼트트랙에서 중국의 홈 텃세를 막기 위해 선수들에게 철저히 중국 선수와 몸싸움에 대해 주의를 줬다.

이미 중국은 이번 쇼트트랙에 나서는 심판 5명 중 심판장을 포함해 사이드 부심 등 3명을 중국인 심판으로 채웠다.

더구나 왕시안 심판장은 지난 1996년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때 심판장을 맡아 전이경의 금메달을 무산시켰던 전력(?)을 가지고 있어 더욱 주의가 요구됐었다.

결국 우려는 이날 남자 500m에서 안현수의 실격으로 현실화 됐고, 한국 선수단은 씁쓸한 속내 속에서도 결과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편해강 심판은 경기가 끝난 뒤 "심판들이 모두 모여 토의를 계속했지만 결국 안현수의 반칙이라는 데 의견을 모아서 어쩔 수 없었다"며 "인코스로 선행 주자를 추월할 때 충돌이 생기면 90% 이상 후행 주자의 잘못으로 처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창춘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horn9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