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프로 스포츠' 배구가 그래도 체면을 세워줬다.

국내 4대 프로 스포츠 중 가장 늦게 출범한 남자배구는 2006 도하아시안게임에서 야구, 축구, 농구가 줄줄이 나가 떨어진 뒤 마지막 보루로 남아 자존심을 지켰다.

작년 2월 원년 V-리그로 출범한 프로배구는 갓 두 시즌을 치른 걸음마 단계지만 투혼과 집중력으로 무장한 태극 스파이커들이 중동의 두 난적 이란, 카타르를 연파하고 15일(이하 한국시간) 결승에서 만리장성 중국을 완파하며 통쾌한 우승을 일궈내 프로 스포츠 팬들의 허탈감을 달랬다.

출범 25년의 프로야구, 24년째인 축구, 열 돌을 넘긴 농구에 비한다면 아직 '아마추어 티'를 벗지 못한 게 오히려 투지의 자극제가 된 셈이다.

남자배구 선전의 중심엔 배구계 '미다스의 손' 김호철(51) 감독이 있었다.

올해 한국배구의 침체는 심각했다.

지난 7월 8년만에 세계의 벽에 재도전한 월드리그에선 이집트에 단 1승만 거뒀을뿐 유럽.북미.아프리카 강호에 잇따라 무너져 1승4패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아시안게임 출정 직전 일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같은 전적으로 16강 진출에 실패하는 쓰라림을 맛봤다.

일각에선 처음 대표팀에 접목한 김호철식 배구가 이탈리아와 국내 프로무대에선 통했을지 몰라도 국가대항전에선 한계가 있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김 감독은 그럴수록 이를 악물었다.

자신의 현역 시절이던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컴퓨터 세터로 활약하며 사상 처음 아시안게임을 제패한 28년 전 기억을 되살려 후배들의 손으로 영광을 재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그만큼 강했기 때문이다.

김호철 배구를 흔히 '열정과 과학의 앙상블'이라 부른다.

독사같은 훈련량에다 플레이가 성에 차지 않을 때 불같이 질책하는 스타일은 열정이다.

세터 권영민(현대캐피탈)에게 밤새 수 백번 토스를 올리도록 하고 함께 코트를 나뒹굴었던 일화도 남아있다.

희생과 열정을 배구의 덕목으로 강조하는 그다.

하지만 분석은 냉철하다.

철저히 데이터를 신봉했다.

이탈리아의 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도입해 삼성화재의 9년 아성을 무너뜨렸듯이 이번에도 딱 세 번의 결전을 위해 숱한 자료를 모았다.

대회 기간에도 선수촌에 비디오 테이프를 가져다놓고 선수들과 함께 적을 해부했다.

김호철 감독은 이날 중국과 결승에서 선수교체 카드를 거의 쓰지 않았다.

심판 판정이 애매하도 항의하지 않았다.

잠시 조직력이 흔들린 2세트를 빼면 타임아웃도 잘 부르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호철 배구는 열사의 땅에서 화려하게 만개했다.

(도하=연합뉴스)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