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절 올리고 싶어요."

도하아시안게임 육상에서 처음 금메달을 따낸 박재명(25.태백시청)은 13일(이하 한국시간) 남자 창던지기 경기가 끝나자마자 파란 눈에 짧은 은발 머리의 중년 외국인 코치에게 덥석 안겼다.

지난 3월부터 박재명을 지도해온 에사 우트리아이넨(53.핀란드) 코치다.

성이 어려워 그냥 '에사'로 불리는 그는 대한육상경기연맹의 간곡한 요청으로 '투창의 나라' 핀란드에서 날아와 '투척 전도사'가 됐다.

핀란드는 올림픽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창던지기에서만 유난히 금메달을 많이 따낸 나라다.

에사는 핀란드 대표팀 코치로 1987년 로마 세계선수권과 1988년 서울올림픽 1위를 이끌어낸 '금 제조기'다.

자신도 현역시절인 1977년 세계에서 가장 먼저 80m대 기록을 냈다.

지난 해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외국인 코치를 물색하던 육상연맹은 수소문 끝에 교직으로 들어가려던 에사를 붙잡아 한국행 비행기를 태웠다.

처음엔 시행착오가 더 많았다.

우선 국내 육상 풍토와 도통 맞지가 않았다.

위탁교육 형태로 대표선수를 가르쳤는데 소속팀에서 선수를 훈련시간에 빼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육상연맹 서상택 총무이사는 "얼마나 답답했으면 지난 여름엔 속초로 혼자 낚시를 하러 가더라. 낚싯대를 기울이고 상념에 잠겨야겠다고 까지 했었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박재명을 비롯해 창던지기 메달 기대주들을 자신의 방식대로 끌고 나갔다.

지난 7월 핀란드에 박재명을 데려가서는 무조건 경기에 출전시켰다.

핀란드 카보, 카렐리아, 가르네바 등 듣도 보지도 못한 대회에 출전하면서 박재명에겐 자양분이 쌓였다.

아테네올림픽에서 자신의 기록(83m99)에 10m 넘게 모자라는 72m70을 던져 예선 15위로 탈락한 그다.

그만큼 심리 컨트롤이 되지 않았고 180㎝, 95㎏의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담력도 문제가 있었다.

에사는 박재명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뜯어 고쳤다.

우선 '살을 빼라'고 했다.

무조건 체중이 많이 나간다고 창도 멀리 날아가리라는 기대는 싹 버리라고 했다.

그 다음엔 '돌멩이라도 매일 던져라'고 주문했다.

비가 오면 체육관에 네트를 쳐놓고 창끝에 테니스볼을 꽂아 던지곤 했다고 한다.

팔로만 던지려 하지 말고 신체의 미들섹션(복부, 등)을 활용해 던지라는 말은 박재명이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말이다.

에사 코치는 박재명을 '미스터 세븐티나인(79)' 또는 '세븐티나인 박'으로 불렀다.

개인 최고기록을 보면 80m를 충분히 넘길 수 있는데도 늘 79m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박재명이 금메달을 따낸 기록도 79m30이었다.

그러나 에사 코치는 더 이상 그 별명을 부르지 않았다.

다음 달이면 계약기간이 끝나 핀란드로 돌아간다는 에사 코치는 "뭔가를 이뤄놓고 떠나게 돼 한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박재명은 "에사 선생님에게 큰 절 올리고 싶어요"라고 화답했다.

(도하=연합뉴스)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