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스웨덴 간 2006 독일 월드컵축구대회 첫 16강전이 열린 25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뮌헨 월드컵경기장. 양팀 선수들이 입장할 때 본부석에서 오른쪽 골대 뒤 관중석에 독일 서포터스가 준비한 카드섹션이 펼쳐졌다.

3층으로 된 관중석을 모두 활용한 대형 카드섹션 중 눈길을 끈 건 세 개의 커다란 통천이었다.

각각 54, 74. 90이라는 숫자와 함께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세리머니를 하는 그림이 담겨져 있었다.

1954년(스위스), 1974년(서독), 1990년(이탈리아) 등 세 차례 월드컵 우승을 거머쥔 독일이 이번 대회에서 4번째 정상에 오르라는 팬들의 염원이 담긴 것이었다.

월드컵 개막을 앞둔 지난 4월 독일 스포츠 전문지 '스포르트 빌트'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 축구팬 5%만이 자국 대표팀이 이번 월드컵에서 통산 4번째 우승컵을 차지할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약 29%의 응답자는 16강에서 탈락할 것으로 내다봤고, 아예 조별리그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대답한 팬들도 10.8%나 됐을 만큼 자국 대표팀을 바라보는 독일 국민의 시선을 싸늘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승승장구하는 독일 축구 대표팀을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니 말이다.

3전 전승으로 A조 1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한 독일은 북유럽 강호 스웨덴을 2-0으로 완파하고 대회 첫 8강 티켓의 주인이 됐다.

조별리그에서 상대적으로 약체들과 한 조에 속했다는 곱지 않은 눈길도 있지만 16강전까지 4경기를 치르며 보여준 짜임새 있고 역동적인 플레이는 많은 축구팬들이 독일을 우승 후보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게 하고 있다.

창의성과 스피드가 떨어지고 기계적인 축구를 구사한다며 '녹슨 전차'라는 오명을 듣기도 했던 독일은 이번 대회에서 환골탈태한 모습이다.

4경기 동안 10골을 뽑아내고 2골만 내주는 등 공.수 모두에서 안정적인 전력으로 정상에 한발 한발 다가서도 있다.

미로슬라프 클로세(26.베르더 브레멘)-루카스 포돌스키(21.FC쾰른) 투톱은 10골 중 7골을 기록하며 전차군단의 '무력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미하엘 발라크(30.바이에른 뮌헨)와 토르스텐 프링스(30.베르다 브레멘)가 버틴 중원은 어느 팀 부럽지 않다.

필리프 람(23.바이에른 뮌헨)-크리스토프 메첼더(26.보루시아 도르트문트)-페어 메르테자커(22.하노버96)-아르네 프리드리히(27.헤르타 베를린)로 구성된 포백 라인은 코스타리카와 조별리그 1차전에서만 두 골을 내줬을 뿐 이후 3경기 연속 철벽수비로 무실점 행진을 하고 있다.

독일 축구의 변모는 환상적인 신.구간 조화가 큰 몫을 했다.

이번 월드컵에 참가하고 있는 독일 대표팀 최종 엔트리 23명 중 1983-1985년에 출생한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이 8명이나 된다.

이중 독일 대표팀의 주전자리를 확실히 꿰찬 공격수 포돌스키와 왼쪽 윙백 람, 왼쪽 측면 미드필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22.바이에른 뮌헨) 등은 이번 대회 4경기 연속 선발 출전해 제 몫을 해내며 팀의 파죽지세를 거들고 있다.

이들은 향후 10년 정도는 독일 축구를 책임질 재목들이다.

이들 '젊은 피'의 활약에, 어느덧 고참급이 돼 버린 발라크와 클로제 등의 농익은 기량이 덧칠해지며 독일 축구의 힘은 더욱 막강해지고 있다.

공격수 올리버 뇌빌(33.보루시아 MG) 같은 노장도 후반 조커로 투입돼 한 골을 터트리는 등 녹슬지 않은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 축구는 자존심이 세다.

최종 엔트리 중 분데스리가가 아닌 다른 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는 주전 골키퍼 옌스 레만(37.아스날)과 수비수 로베르트 후트(22.첼시) 뿐이다.

'클린스만호'는 자국 리그까지 대표하는 진정한 국가대표팀이다.

한때 자국 대표팀에 냉담했던 독일 국민은 '전차군단'의 행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를 이야기하며 한바탕 축제를 벌이고 있다.

(뮌헨=연합뉴스) hosu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