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을 잃었다.

안타까운 탄성만이 남았다.

독일 하노버에서, 서울시청 앞에서, 한반도 전역에서 목이 터질 것 같은 '대~한민국'의 함성이 끊임없이 울려퍼졌건만 승리의 여신은 야속하게도 태극전사들의 편이 아니었다.

자랑스러운 23인의 전사들은 원없이 싸웠다.

그들의 투혼은 하노버 하늘 아래 그 어떤 것보다 찬란하게 빛났다.

4천만의 붉은 함성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칠 줄 몰랐다.

그러나 승부는 승부였다.

2006년 6월 태극호의 운명은 안타까운 좌절을 맛봤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4일(이하 한국시간) 하노버에서 열린 2006 독일월드컵축구 조별리그 G조 최종전 '알프스 전사' 스위스와 운명을 건 결전에서 전반 23분 필리페 센데로스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하고 후반 32분 알렉산더 프라이에게 석연찮은 추가골을 내줘 0-2로 분패했다.

같은 시간 쾰른에서 열린 프랑스-토고전에서 '늙은' 프랑스가 토고를 2-0으로 눌렀다.

1승1무1패(승점 4)가 된 한국은 2승1무(승점 7)를 기록한 스위스, 1승2무(승점 5)가 된 프랑스에 밀려 안타깝게도 16강이 겨룰 2라운드 문턱에서 물러났다.

주심을 맡은 아르헨티나의 오라시오 엘리손도 심판은 후반 프라이의 추가골 상황에서 부심이 분명히 오프사이드 깃발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골을 인정했다.

꺼림칙한 판정이 승부에 끼어들면서 태극호의 꿈은 무참하게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전면 공격대형으로 승부를 걸었다.

박주영-조재진-박지성을 스리톱(3-top)으로, 이천수를 섀도 공격수로 놓는 사실상의 4-2-4 포메이션으로 초반부터 파상 공세를 펴는 전략을 썼다.

초반은 일진일퇴의 공방이었다.

전반 3분 이천수의 왼쪽 측면 돌파에 이어진 크로스가 조재진의 머리 위로 날아간 뒤 6분과 8분 하칸 야킨과 트란퀼로 바르네타에게 연속 공간 돌파를 허용했다.

곧이어 박주영이 흘려준 볼을 박지성이 기습 중거리 슛으로 연결했으나 골키퍼 품에 안겼다.

전반 10분 패스미스로 위기가 찾아왔다.

이영표의 볼을 끊은 스위스는 바르네타가 골키퍼와 1대1로 맞서 슈팅을 날렸으나 최진철이 육탄 방어로 슛을 굴절시켰다.

공방을 주고받던 한국은 전반 23분 안타까운 선제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박주영이 얼떨결에 바르네타를 손으로 잡아끌다 경고를 받았고 야킨이 미드필드 우중간에서 프리킥 찬스를 잡았다.

야킨의 왼발 프리킥은 날카롭게 휘어져 문전으로 향했다.

순간 공격에 가담한 스위스 장신(190㎝) 수비수 센데로스는 불쑥 튀어올라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헤딩슛을 날렸다.

정확히 앞 이마에 명중한 볼은 이운재가 미처 손쓸 틈도 없이 한국 골문 오른쪽 상단에 꽂혔다.

최진철이 같이 점프해 눈두덩이가 찢어지는 투혼으로 헤딩슛을 막아보려 했지만 무위였다.

센데로스와 최진철은 머리를 부딪쳐 둘 다 피를 흘렸다.

최진철은 붕대를 붙이고 나와 다시 수비에 나서는 정신력을 발휘했다.

전반 38분 야킨의 프리킥을 이운재의 선방으로 막고 2분 뒤 야킨의 왼쪽 사각 슛이 김동진의 어깨에 맞고 나가 위기를 넘긴 한국은 전반 막판부터 반격에 나섰지만 동점골은 쉽게 터지지 않았다.

전반 44분 이천수의 중거리슛을 골키퍼가 다이빙해 막았고 45분 골문 바로 앞에서 박주영의 왼발 터닝슛은 빗맞았다.

곧바로 이천수가 다시 오른발 중거리포를 작렬했으나 이번에도 골키퍼 추베르뷜러의 손끝에 걸려 아웃됐다.

전반을 0-1로 뒤졌지만 이 때까지는 여전히 희망이 있었다.

같은 시간 프랑스와 토고가 득점없이 비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16강행에 먹구름이 드리운 건 하노버가 아니라 쾰른에서였다.

프랑스가 후반 10분 파트리크 비에라가 토고의 골문을 열었고 후반 16분 티에리 앙리가 추가골을 터뜨렸다.

프랑스가 2-0으로 앞서가고 있음을 안 아드보카트 감독은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수비수 이영표를 빼고 안정환을 투입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공격수를 5명으로 늘리는 모험을 감행했다.

하지만 오히려 역습을 당해 후반 19분 프라이에게 돌파를 허용했고 프라이의 오른발 강슛은 골대를 강하게 때려 다행히 추가 실점을 피했다.

후반 20분 박주영 대신 설기현을 투입한 한국은 후반 21분 조재진이 이천수의 크로스를 방아찧기 헤딩으로 꽂았으나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석연찮은 추가골은 후반 32분에 나왔다.

수비를 굳히기 위해 투입된 스위스의 사비에 마르제라즈가 미드필더 중앙에서 패스를 찔러줄때 프라이는 분명히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고 부심은 깃발을 들었다.

그러나 플레이는 계속됐고 프라이는 이운재와 1대1로 맞선 뒤 한번 방어막을 편 골키퍼를 뚫고 들어가 추가골을 뽑았다.

한국 선수들이 달려가 항의했지만 주심은 판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아드보카트 감독도 테크니컬 지역에서 거칠게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심은 스위스의 패스가 한국 수비수 발에 맞고 굴절됐기 때문에 오프사이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전반 12분과 43분에도 센데로스와 수비수 파트리크 뮐러가 페널티지역 안에서 핸들링을 범하는 듯한 장면이 있었다.

그러나 주심은 핸들링 파울을 선언하지 않았다.

아드보카트호는 막판 공세를 취했다.

후반 40분 김진규가 이호의 패스를 받아 때린 슛은 크로스바를 튕기고 나갔다.

골대까지 아드보카트호의 편이 아니었다.

주심의 휘슬이 울리자 이천수는 머리를 그라운드에 박고 쓰러졌다.

전광판에는 프랑스의 2-0 승리 소식을 알리는 사인이 떴다.

본부석 왼쪽을 가득 메운 붉은 악마들은 할 말을 잃고 하늘만 바라볼 뿐 자리를 뜰 줄 몰랐다.

(하노버=연합뉴스)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