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킥복싱도 배워요"

지난 2월 박세리(29.CJ)의 동계훈련장을 찾은 소속사 CJ 직원은 박세리의 이 같은 말에 깜짝 놀랐다.

골프 스윙 연습과 체력 단련이야 골프 선수라면 누구나 하는 프로그램이지만 킥복싱이 훈련 과정에 들어있다는 게 의아했다.

그러나 박세리는 스윙도 스윙이지만 정신력 훈련이 절실하다면서 킥복싱 뿐 아니라 태권도까지 배웠다.

박세리의 스윙은 데뷔할 때부터 깔끔하고 군더더기없는 파워스윙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초기엔 데이비드 레드베터가 잠깐 손을 봤지만 1997년부터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톰 크리비 코치와 '영원한 스승'인 아버지 박준철씨가 꾸준히 가꿔온 스윙은 사실 슬럼프의 원인이 되기 어려웠다.

문제는 정신력이라는 진단이 일찌감치 내려졌다.

정신적 방황이 이어지면서 그 좋던 스윙도 다 망가졌고 그린에서 퍼팅은 전혀 자신감이 없으니 홀에 들어갈 리 만무했다.

그러나 목적 상실에 따른 허탈감이라거나 오로지 자나깨나 골프만 생각하는 단조로운 일상이 화근이라는 지적, 심지어는 결혼 적령기에 이른데 따른 외로움 등 다양한 분석이 있었지만 치료가 안됐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였다.

본인 진단에 따르면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잘 안되는 악순환에 빠졌다"며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경기 때마다 들었다"고 했다.

일종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셈이다.

더구나 실력이 출중한 후배들이 해마다 태평양을 건너오자 선두 주자로서 위상을 지키겠다는 압박감은 더해갔다.

때문에 박세리 스스로도 "그동안 골프만 치던 식의 훈련보다는 여유도 찾고 쉬고 싶을 때 쉬면서 하겠다"고 나름대로 처방을 내렸다.

그렇지만 놀 때도 골프채를 하루만 안 쥐어도 불안하다던 박세리가 쉬면서 정신적 안정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심지어 아버지 박준철씨에게 "왜 아빠는 나한테 노는 법은 안 가르쳐줬냐"며 눈물을 흘리며 따지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세리는 차츰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 겨울 박세리를 만났던 이들은 한결같이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전했다.

더 이상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즌이 시작돼 초반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좀 기다리면 좋아질 것"이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김미현(29.KTF)이 모처럼 우승하자 "나도 곧 재기할테니 기대해달라"고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박세리는 흐트러진 스윙을 바로 잡는데 땀을 쏟았다.

크리비 코치는 백스윙 때 톱에서 잠깐 멈췄다 다운스윙에 들어가는 새로운 스윙을 권했고 이에 따라 안정감과 함께 임팩트 후 자신있게 클럽을 내던지듯 뻗어주면서 파워도 되찾았다.

볼만 종전에 쓰던 맥스플라이를 고수했을 뿐 클럽도 테일러메이드 드라이버와 핑 아이언, 오딧세이 퍼터 등으로 모두 교체했다.

박세리는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올해 시즌을 맞았다"면서 "정신적 여유를 되찾았기에 앞으로 좋은 소식을 자주 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전성기 때와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권 훈 기자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