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는 첫 씨앗이 뿌려진 지 올해로 꼭 101년이 됐다. 비록 시작은 미미했으나 한국 야구는 이제 종주국 미국을 격파할 정도로 튼튼히 뿌리내리며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1839년 미국 뉴욕에서 처음 시작된 야구는 1905년 한국 YMCA의 초대 총무를 맡았던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Phillip Gillet)가 최초로 `황성 YMCA야구단'을 조직하며 이 땅에 첫 선을 보였다. 이후 야구는 각급 학교를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보급기를 거쳐 1960-70년대에 이르러 고교야구의 전성기로 꽃을 피운다. 고교야구가 이 시절 온 국민을 울리고 웃기는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으며 야구는 국민 스포츠로서의 가능성을 내비친다. 고교 야구의 인기를 바탕으로 야구는 1982년 전격적으로 프로로 전환, 새로운 전기를 맞게된다. 군사정권의 '3S'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됐다는 일부 비난에도 불구하고 프로야구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 연간 300만 관중을 동원하는 국민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1990년대 중반이 되자 프로야구의 꿈을 먹고 자란 재능있는 선수들이 속속 출현해 한국 야구는 1994년 박찬호를 신호탄으로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로까지 지평을 넓힌다. 한국 선수들의 빅리그 진출은 그동안 우물 안에 머물던 한국 야구가 국제화되는 계기가 되는 한편 국내 야구 팬들의 시야도 더욱 넓어져 한국 야구의 질적인 성장을 부채질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가운데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우리보다 프로야구 역사가 반세기 앞선 일본을 3,4위전에서 꺾고 동메달을 거머쥐는 쾌거를 달성하기도 했다. 야구는 이후 월드컵 열기 속에 축구에 밀려 잠시 주춤하는 듯 했지만 지난해 도입 100주년을 맞아 적극적인 마케팅 속에 다시 400만 관중을 불러모으는 등 부활의 기지개를 켰다. 명실상부한 세계 야구 최강국을 가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야구 종주국 미국을 꺾고 사실상 4강 진출을 확정지은 것은 한국 야구 101년 사상 백미로 꼽힌다. 한국은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국보투수' 선동열을 앞세워 미국을 격파하는 등 역대 아마추어 대회에서는 여러 번 미국을 꺾은 적이 있지만 이번엔 메이저리그 정상급 선수로 구성된 최강팀을 상대로 매운 맛을 보여줘 의미가 남다르다. 이번 승리는 세계 속에 한국 야구의 위상을 드높이는 동시에 또 한차례 힘찬 도약의 전기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ykhyun1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