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보카트호 해외 전지훈련이 막을 내렸다. 오는 22일 밤(이하 한국시간) 시리아 알레포에서 2007 아시안컵 예선 1차전 시리아와 원정 경기를 치러야 하지만 일단 훈련이라는 명목으로는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 1월15일 밤(이하 한국시간) 인천국제공항에 심야 소집돼 17일까지 34일을 거의 쉼없이 달려왔다. 중동, 홍콩, 미국을 거치며 9차례 공식.비공식 평가전을 치렀다. 성적표는 5승1무3패(미국전 포함). 도중에 이동과 휴식일을 빼더라도 스무 번에 육박하는 훈련 일정을 큰 탈없이 이겨냈다. 조직력, 체력, 개인기 등 전력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두루 점검했다. 태극전사 23인은 한 달 넘도록 치열한 생존경쟁에 시달렸다. 미드필더 김정우(나고야)가 홍콩에서 소속 팀으로 복귀했지만 22명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아드보카트호의 지난 34일을 항목 별로 평가해본다. ◇태극전사 '주가' 비교 처음 3기(期) 아드보카트호 명단이 발표됐을 때는 예상한 대로라는 평도 있었고 새내기 3인방(조준호, 정조국, 장학영)을 포함해 전격적인 '발탁 인사'라는 평가도 나왔다. 23인 태극전사의 개별 주가를 살펴보면 꾸준히 실력을 발휘한 실적주도 있고 널뛰기 장세에 다소 휘둘린 종목도 있었다. 우량주를 꼽으라면 이천수(울산)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천수는 K-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기세를 등에 업고 기복없는 플레이로 오른쪽 윙 포워드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평가전에서 2골 2도움으로 가장 많은 공격 포인트를 올렸다. 중동에서 아드보카트호의 전훈 첫 골과 두번째 골을 잇따라 작렬했던 박주영(FC서울)은 후반부 주가가 좋지 않았다. 국내 한 방송에서 나온 '플레이 자질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코칭스태프는 여전히 왼쪽 윙포워드 요원으로 그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동국(포항)은 초반에 잠잠하다 갈수록 상승세를 탔다. 지난 9일 LA 갤럭시전에서 어렵사리 마수걸이 득점포를 쏜 뒤 16일 멕시코전 결승골로 상한가를 쳤다. 정조국(FC서울)은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지난 5일 미국과 비공개 평가전에서 감각적인 토킥으로 네트를 갈라 나름대로 인상을 남겼다. 조재진(시미즈)도 세 차례 중앙 포워드로 선발 출전해 한 골을 뽑아내며 경쟁력을 시험했다. 정경호(광주)는 다섯 차례 선발로 나와 매번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공격 포인트가 없었다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미드필더 라인에서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총애'를 받고 있는 백지훈(FC서울)이 지난달 21일 그리스전부터 지난 1일 덴마크전까지 네 경기 연속 공격형 미드필더로 풀타임을 소화해 중반부의 최고 블루칩이었다. 그러나 12일 코스타리카전에서 심한 타박상을 당해 멕시코전에서는 벤치에 앉았다. 더블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수원)과 이호(울산)는 서로를 의식한 '신.구 라이벌주'였다. 하지만 미국과 비공개 경기부터 미국내 평가전에서 네 경기 연속 동시에 선발로 나와 '듀오 체제'의 안정성을 인정받았다. 김정우는 초반 강인한 몸 싸움으로 평가를 받았지만 중도 팀 복귀로 더 많은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김두현(성남)은 백지훈과 끊임없이 경쟁했고 멕시코전에서는 무난한 평가가 내려졌다. 갤럭시전에서 골을 뽑아 '한 방'도 보여줬다. 수비라인에서는 김진규(이와타)가 돋보였다. 김진규는 미국에 와서 꽃을 피웠다. 미국전에서 캐넌슛으로 골맛을 본 뒤 네 경기 연속 중앙 수비 왼쪽 편에서 파트너를 바꿨다. 다소 불안한 모습도 있었지만 베테랑들과 비교적 괜찮은 호흡을 보여줬다. 최고참 최진철(전북)은 '솔직히 힘들다'는 내색을 하면서도 '포백 라인의 대변자' 역할을 맞아 조직력을 다졌다. 김상식(성남)은 나름의 근성을 보여줬고 김영철(성남)과 유경렬(울산)은 상대적으로 기회가 적어 아쉬웠다. 좌우 윙백은 왼쪽 김동진(FC서울), 오른쪽 조원희(수원)가 선점했다. 김동진은 지난달 29일 크로아티아전에서 터져나온 장거리 생일 축포로 주가 반등에 성공했다. '아드보카트호 1호골의 주인공' 조원희는 과도한 오버래핑이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항상 파이팅이 넘쳤다. '볼이 오는 게 무서웠다'고 털어놓은 새내기 장학영(성남)은 좌충우돌했지만 가능성은 발견했다. 오른쪽 윙백으로 보직을 바꾼 최태욱(시미즈)은 부상으로 미국에 오면서부터 뛰기 시작한 게 시점상 다소 늦었다. 수문장 이운재(수원)는 미국전과 갤럭시전 후반을 제외하고 전 경기를 풀타임으로 뛰었다. A매치 출전 횟수를 91로 늘려 센추리 클럽을 가시권에 뒀다. '놀면서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은 절대 아니다'고 한 이운재는 주장 역할을 충실히 소화했다. 늦깎이로 대표팀에 입문한 조준호는 한 경기 반을 뛰었지만 큰 실책은 없었다. K-리그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조금 보여줄 순 있었다. '리틀 칸' 김영광(전남)은 중동에서 오른다리 안쪽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해 내내 얼음주머니를 감고 살았다. 막판에 볼을 잡는 훈련을 하게 된 게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A학점엔 2% 모자라는 성적표 9차례 평가전에서 아드보카트호는 득점 11점, 실점 7점을 기록했다. 5승1무3패라는 성적표는 빡빡한 대진 스케줄을 소화한 것치고는 꽤 좋은 편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3승1패를 해 뒤쪽으로 갈수록 강해졌다. 미국과 비공식 경기, 갤럭시전을 빼고 A매치 성적만 따지면 3승1무3패로 반타작이다. 유럽 4개팀, 북중미 3개팀, 중동과 클럽 각 한 팀과 대결했다. 월드컵 본선 적응력의 관건인 유럽팀과 전적은 2승1무1패로 괜찮았다. 그러나 상대팀의 전력이 1진이냐, 1.5진이냐, 2진이냐를 따져보면 밖으로 표출되는 성적표만 믿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월드컵 본선 진출국 크로아티아를 2-0으로 완파했고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6위의 본선 톱 시드팀 멕시코를 눌렀다. 반면 월드컵 에선에서 탈락한 덴마크에 1-3으로 역전패했고 코스타리카에도 역습 한 방에 무너졌다. 비공개 평가전이기는 하지만 미국을 누른 건 빼놓을 수 없는 전과다. 미국은 엿새 뒤 일본과 공식 평가전에서 후반 15분까지 '지코 재팬'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며 세 골차로 스코어를 벌렸다. 상대팀 중 가장 강한 전력으로 평가되는 미국과 멕시코를 모두 물리쳤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유럽팀.원정 적응력 '눈에 띈 수확' 한국은 월드컵 본선에서 유럽 두 팀(프랑스, 스위스)과 만난다. 어차피 유럽에 대한 경쟁력이 16강 진출을 결정지을 최대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스위스와 비슷하다는 그리스와 비기고, 덴마크에는 졌다는 게 적잖은 교훈을 줬다. 체격이 좋고 강인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덴마크를 맞아 후반 수세에 몰리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경험을 쌓았다. 유럽팀은 전훈 초.중반부에 모두 만났기 때문에 조직력이 완전히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맞붙었다. 막바지에 맞닥뜨렸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원정 적응력은 마지막 멕시코전에서 확실히 체득했다. 광적인 멕시칸 팬 수만명이 몰려 LA 메모리얼 콜리세움을 '아즈텍의 땅'으로 만들었지만 태극전사들은 별다른 동요없이 제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다. 독일과 인접한 프랑스, 스위스와 맞붙는 한국으로서는 돈주고 살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옥 철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