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치부심, '삭발투혼'을 불사른 '아시아 홈런왕' 이승엽(29.지바 롯데 마린스)이 일본 진출 2년 만에 거포 본색을 뽐내며 성공적인 시즌을 치렀다. 28일 니혼햄전을 끝으로 이승엽은 정규시즌을 모두 마치고 10월 8일부터 시작하는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퍼시픽리그 플레이오프 제1스테이지를 준비한다. 27일 현재 30홈런 82타점을 기록하며 시즌 전 세웠던 30홈런-80타점 목표를 달성한 이승엽은 '강호'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넘어 리그 챔피언에 오른 뒤 일본시리즈 정상 등극을 꿈꾸고 있다. 홈런과 타점은 각각 팀내 1위이며 리그 6,7위의 성적이다. 베니와 프랑코를 제치고 2년 만에 팀내 주포로 확실히 자리잡았다. 일본 진출 첫해이던 지난해 14홈런, 50타점 타율 0.240에 그쳤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을 거듭한 셈. 그는 권토중래를 노리며 지난 겨우내 구슬땀을 흘렸다. '사부'인 박흥식 삼성 타격코치와 전성기 타격폼에 대해 깊이 연구했으며 파워를 기르려고 웨이트트레이닝장에서 기구와 씨름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변화는 일본에서 시작됐다. 한국에서 동계훈련을 마치고 일본에 상륙한 그는 후쿠우라 가즈야 등 팀 동료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일본 야구에 적응하는 쪽으로 급선회했다. 한국에서 지켜왔던 자신의 전성기 타격폼을 계속 지켜가기 보다는 짧게 돌아나오는 일본 특유의 스윙으로 매커니즘을 바꿨다. 마쓰나카 노부히코(소프트뱅크), 다카하시 요시노부(요미우리) 등 일본 최정상급 좌타자들의 타격폼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는 가장 좋은 교과서였다. 또 일본 야구에 정통한 김성근 전 LG 감독이 롯데 마린스의 순회코치로 부임하면서 이승엽은 한 층 더 안정감을 찾게 됐다. 야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한 김 코치는 이승엽의 장단점을 철저히 분석, 집중적으로 지도했고 이승엽은 포크볼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지난해와 달리 안정된 타격폼으로 꾸준한 성적을 올리기 시작했다. 또 다른 용병 파스쿠치에 밀려 개막전 로스터 진입에 실패했던 그는 2군 리그인 이스턴리그에서 홈런포를 가동하며 장외시위를 벌인 끝에 마침내 4월 3일 소프트뱅크전부터 1군에 등록됐다. 올해부터 시행된 일본프로야구의 인터리그는 이승엽을 위한 제도였다. 그는 5~6월 센트럴리그팀과의 36경기에서 12홈런을 터뜨리며 인터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그의 홈런은 팀이 인터리그에서 12개팀 중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리는 데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방망이 한 자루로 시작된 그의 '열도 정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지속됐다. 그가 홈런을 때린 날 롯데는 26승 4패를 거두며 '이승엽 홈런=승리'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인상적인 홈런도 적지 않았다. 5월 20일 주니치 드래곤즈전에서는 8회 2사까지 퍼펙트 망신을 당하던 팀을 홈런포로 구해냈다. 7월 4일 일본의 심장부인 도쿄돔에서 벌어진 니혼햄전에서는 '미스터 베이스볼' 나가시마 시게오의 얼굴이 실린 대형 광고판을 맞히는 150m짜리 초대형 홈런을 날리며 일본팬에게 강하게 어필했다. 리그 전구단을 상대로 홈런을 터뜨렸고 후쿠오카돔에서만 홈런이 없었을 뿐 지난해 거론됐던 '돔구장 징크스'에서도 완전히 벗어났다. 롯데와의 2년 계약을 끝나는 올해 말 그는 일본 잔류를 선언한 상태. 롯데는 이미 2년간 50억원을 내걸며 이승엽을 잡겠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어 그가 어떤 선택을 내릴 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