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한국시간) 끝난 US오픈여자골프대회에서 LPGA투어 메이저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 김주연(24.KTF)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제2의 박세리'로 불렸던 기대주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숍을 운영하던 프로야구 선수 출신 김일권씨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한 김주연은 청주 상당여고 시절이던 98년 국가대표로 발탁돼 같은 해 방콕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은메달을 따냈다. 또한 99년 한국주니어골프선수권과 중고골프연맹회장배 우승을 비롯해 국내 아마추어대회에서 19차례나 정상에 오르는 등 아마추어 최강자로 군림했다. 김주연의 부모는 김주연이 상당여고 재학 시절 아파트를 처분하고 전세로 집으로 옮긴 뒤 옷가게를 운영하며 뒷바라지했다. 박세리를 능가하는 체격 조건에 장타력이 돋보인 김주연은 큰 무대에서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 2000년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하지만 낯선 미국땅에서의 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미국으로 건너간 첫해에 김주연은 손목 부상 때문에 LPGA 진출에 고배를 마셨고 2001년에는 2부투어인 츄마쉬카지노클래식과 사우스웨스턴 벨퓨처스클래식에서 우승했지만 235달러의 상금 차이로 LPGA 풀시드권 획득에 실패했다. 친동생과 함께 지내며 힘든 투어생활을 하던 김주연은 2003년 퓨처스투에 상금랭킹 4위에 오른 뒤 다음해 꿈에 그리던 풀시드권을 따내며 기회를 잡았지만 LPGA 무대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2000년 카트에서 떨어져 부러진 손목 때문에 샷은 흔들렸고 2004년 20개 대회에 출전, 최고 성적은 공동 42위에 그쳤고 컷 통과도 단 3차례에 불과했다. 상금은 9천89달러로 꼴찌에 가까운 160위에 그친 김주연은 투어 카드를 상실했고 퀼리파잉스쿨에 응시해 공동12위로 다시 한번 LPGA 투어에 도전할 수 있었다. 김주연은 작년부터 `버디 김'이라는 닉네임으로 등록,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버디 김'은 LPGA투어에 `김'씨라는 이름이 많아 혼돈을 피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것이 김주연의 설명. 그러나 올 시즌 13개 대회에 참가해 절반이 넘는 7개 대회에서 컷오프를 당하면서 고전은 계속됐다. 4개 대회 연속 컷오프를 당한 끝에 출전한 지난 5월 칙필A채러티 챔피언십에서 공동7위에 오르면서 생애 첫 '톱10' 입상을 이룬 김주연은 이번 우승으로 단숨에 LPGA 한국 낭자군의 선두주자로 등장했다. 김주연은 고질병이 될 듯 하던 손목 부상이 완쾌되면서 파워풀한 드라이브샷이 살아나고 아이언샷 정확도가 차츰 향상되고 있다는 것. 퍼팅에서도 문제점을 드러냈던 김주연은 최근 퍼터를 `핑'에서 `블루파워'로 교체한 뒤 안정감을 되찾고 있다고. 176㎝, 68㎏의 좋은 신체 조건을 갖춘 김주연은 아버지 김용진씨의 4녀1남 중 장녀이며 지난 2002년부터 5년간 KTF와 6억5천만원에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서울=연합뉴스) 최태용 기자 cty@yna.co.kr